한희송(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 한희송(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신석기시대와 구석기시대를 결정적으로 구분짓는 사건은 ‘농업의 발견’이다. 채집경제(採集經濟)에 의존하던 인류가 더 이상 먹을 것을 찾아 유랑하지 않게 되자 정착생활에 맞는 생활양식을 개발해 나아갔다. 먼저 농사에 필요한 농토와 씨앗을 확보하고 제작에 긴 시간이 필요한 간석기를 만들었다. 동시에 주거환경을 개선해나갔다. 농사라는 일은 많은 새로운 일거리를 인류에게 선물했다. 여러 사람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뭉쳐야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겼고 이는 이들을 이끌어야 하는 지도자를 요구하는 집단사회의 탄생을 가져왔다.
   선사시대에서 자연현상은 사람들이 순종해야하는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그 힘을 가진 존재가 신격(神格)을 취득하는 것은 당연했다. 신(神)은 자연현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때 신의 의도가 무엇인지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바로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뿐이었다. 이들은 정기적인 제사를 통해 신과 소통할 수 있었다. 정치지도자가 종교지도자인 제사장이란 지위를 겸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농업과 도구의 발전은 사회규모를 크게 했고 그것은 동시에 그 집단에 필요한 사람들의 구성이라는 이성적이고도 논리적인 사건의 등장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성과 논리는 곧 신이 하던 일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비가 안 오면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저수지를 축조해서 이를 이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자 정치지도자는 종교지도자의 위치를 겸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입지를 좁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켰다.
   사람의 성향을 문화, 예술적 관점에서 보면 고전주의(Classicism)와 사실주의(Realism)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인간의 삶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경우든 존재해야 해야 한다고 생각되어지는 일반화된 가치를 설정한다. 후자는 일반화된 가치는 현실에서 나타난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한정되어야 하므로 인간을 판단할 수 있는 모범적 기준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미술가의 작품을 볼 때 고전주의자들은 그 그림의 가치를 먼저 원근법, 명암법 그리고 재료 등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명화가 되기 위해 적어도 이런 조건을 전제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보면서 그 규모와 색과 작품의 완성도에 감탄한다.
   반면 사실주의자들이 보는 작품의 가치는 그 그림의 내용이 얼마나 잘 표현되었는가 하는 것에 있다. 최후의 심판은 최후의 심판이란 사실이 누구에게는 승리의 사건으로 누구에게는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만 하는 고통으로 느껴질 때 존재가치가 있다. 그냥 ‘잘 그렸다’는 칭찬을 받는 것은 ‘최후의 심판’이란 사건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사람은 모두 고전주의적 성향과 사실주의적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 사실을 인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공부이고 이러한 노력을 통해 인간의 고전주의적 이상과 사실주의적 현실을 결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교육이 근본이고 인간의 존재가치를 설정함에 있어서 교육이 결정적 요소가 됨이 이에서 비롯된다.
   최순실이란 이름으로 대표되는 모종의 사태가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다. 정치와 종교, 이성과 감정, 논리와 비논리, 교육이란 정신적 가치와 돈과 권력이란 물질적 가치의 모든 문제가 구분할 수 없이 뒤섞인, 참으로도 이상한 현실을 국민들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보고 있다. 청동기시대에 분리된 정치와 종교가 다시 합쳐졌다는 이야기며, 지난한 역사를 통해 인간의 존재가치를 다루는 교육이 돈과 권력보다 하위에 있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이성과 논리분야인 국가정치가 개인의 감성적 판단에 의해 그 모습을 바꾼다는 이야기도 곁들여진다.
   오랜 시간동안 우리 사회는 고전주의와 사실주의 어느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현실에 이끌려왔다. 그러한 사실이 역사에 던진 그림자에서 개개의 사건들이 또 다른 응달을 만들어가며 구분할 수 없는 그림자끼리의 교차점들을 생산했다. 그 음지의 시스템이 겉으로 보이도록 드러난 것 중 하나가 이번 일일 것이다.
   이번 사건을 해결해 가면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가진 객관적 부분과 우리 내면에 형성되어 온 주관적 부분들에 오랫동안 터를 닦아온 이끼들로 하여금 그 모습들을 드러내게 해야 한다. 사건의 객관적 전말에 대한 검찰이나 사법당국의 판단에서 그르침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그와는 별도로 우리 사회가 현실적 삶과 추상적 정신의 바탕에서 이러한 그림자가 자신의 둥지를 지을 수 없도록 이번 일을 통해 올바른 철학을 세워야한다. 교육의 바탕에 삶의 근본이 터를 닦도록 체계를 잡아 나가는 데에 있어서 현재의 어지러움이 타산지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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