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논설위원/가톨릭대 교수)

▲ 김주희(논설위원/가톨릭대 교수)

마침내, 기어이, 드디어, 결국 마지막은 온다. 올해도 겨우 한 달 남짓 남았을 뿐, 끝은 어떻게 해도 온다. 국방부 시계도 돈다는데 하물며. 시간이 흘러 흘러간다. 그에 따라 우리의 어떤 일들도 끝을 드러내게 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결산의 순간에 부닥치는 일이 일어나고야 만다. 바닥까지도 드러나는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어느 순간.
 누구나 시작은 거창하지 않을 수 있다. 그냥 소소하게 외롭거나 심심하거나 재미있거나 또 유익하거나 존경하는 따위의 일들로 만나고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나누기 시작할 수 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런 일들까지 진전되는 건 행운에 속하는 일일 수 있다. 세상의  많은 사람 중에 자꾸 만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그러고 싶어도 상대가 그러지 않을 수 있으니 서로 마음이 맞는다는 것은 흔하지도 쉽지도 않은 일일 수 있다. 사람의 관계가 참으로 기이한 게 어느 정도 시간과 경험을 나누다보면 어떤 관계인가로 정리되고 변화되는 시점이 생겨난다. 그 때 그냥 넘어가는 것을 선택하면 둘의 관계는 특별해 질 수 있다.
 결혼반지 끼고 있는 남자를 미혼의 젊은 여성이 왜 단둘이 만나기 시작하느냐고 걱정 섞인 경고를 보내는 글을 읽은 게 스물 몇 살 때였을까. 책으로 인생의 많은 것들을 배워가던 그 때, 그 말은 시의적절한 데가 있었다. 마침 같은 과 친구에게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자주 찾아와서 밥도 사주시고 했다. 우리가 보기에 그는 선생님이었고, 많이 친절했다. 옆에 있는 나까지 챙겨 주니 고마웠는데 그 분이 타고 오는 오토바이에 내 친구를 태우고 어딘가를 가는 일은 심란스러웠다. 남자 오토바이 뒤에 타지 말고, 남자와 단 둘이 저수지에서 배타고 놀지 말라고 대학 들어가기 전 미리 암기시키던 엄마의 그 번거로운 금지조항 때문이었다. 우리 엄마는 오토바이를 타면 내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거나 둘이 앉아 노를 젓는 놀이배는 뒤집히는 사고라도 나면 물에 빠져 죽을까봐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 글을 읽은 뒤로  친구와 점검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젊던 그 선생님은 시간이 나면 휘리릭 학교에 와서 친구를 만나고 밥을 사주고 드라이브를 시켜주셨던 것 같은데 아마도 자기의 젊음을 지루해하거나 한탄하거나 누리거나 발산하는 그 어디쯤이었을까, 어쨌든. 그건 모를 일이지만 그 일에 친구가 개입되는 건 별개의 일이어야 했다. 선생님도 결국 결혼반지 낀 사람으로 보기로 했다. 만나는 일이 진전되면 그의 집안이 깨지거나 친구가 깨지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선생님이 대학 들어간 제자 격려해 주시는 거면 한 번 정도면 됐다고, 밥을 사주고 영화를 보여주는 선생님의 호의는 거기까지면 족할 일이라고. 끝이 예측될 만한 일은 그쳐야 할 때가 있는 것이라고.
 지금 나라가 온통 난리이다. 감성의 극치이거나 무신경하게 문장 성분 중에서 목적어나 주어를 자주 빼먹으며 담화하던 대통령과 그의 오랜 친구인지 갑을 관계인지 영적 관계인지 모를 여인네의 일로 황당하고 당황하는 중이다. 게다가 배울만치 배우고 경험할 만치 경험하고 성공할만치 성공한 그 곁의 위인들에 대해. 이게 이십 일 세기 정치 민주화가 진전되었다는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
 한 나라의 정치와 통치가 개인의 일처럼 처리되었으리라는 여러 사실들이 연이어 터져나오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들을 너무도 버젓하게 하면서 그 일에 의미까지 부여하면서 의지에 차 있던 담화들은 그 당당한 태도로 더 어지럽다. 사실들을 확인하면서도 흔연히 믿어지지도 않는 이상한 심정에 휩싸이게 되는 일이 며칠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 드러난 일들만으로도 정말이지 만화같은 그 사실이 더 기이하고 놀랍다. 순진한 것도 아니고 보면 모자라는 쪽일지, 자신있는 쪽일지 결국은 모두 다 참 기이하다는 데로 생각이 모이게 된다. 폭로되는 사실들은 개인의 일과 국가의 일을 구별하지 않은 대통령의 무력함을 가리키는데, 이런 끝이 올 것을 몰랐다면 무지하고, 알고도 그랬다면 무모하다. 관심이 없었다면, 그랬다면 무섭다. 그둘은 좋은 관계인걸까, 그럴까. 마종기 시인은 늘 싱싱하고 맑은 물길을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고 시 ‘우화의 강’에서 그러시던데. 바닥에 부산물이 남지 않는 깨끗하고 고운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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