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가려진 시간’

화노도 섬 아이들 의문의 실종

갑자기 30대 얼굴로 나타난 ‘성민’

멈춰진 시간에 갇혀 어른이 됐다는

그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데…

그 남자 신뢰한 단 한 소녀 ‘수린’

인간의 믿음·순수함 내밀히 표현

강동원·신은수 주연… 16일 개봉

 

(연합뉴스)영화 ‘가려진 시간’은 극 중 시간이 멈춘 세계처럼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영화다.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소재와 장르라는 점에서 그렇고, 한 편의 판타지 동화이면서도 지독한 현실을 디딤돌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화의 무대는 화노도라는 가상의 섬이다.

엄마를 잃고 새아빠와 함께 이곳으로 온 수린과 보육원에서 사는 성민은 친구가 된다.

숲속 둘 만의 비밀 공간에서 둘만의 암호로 대화하며 추억을 만들어 간다.

어느 날 공사 중인 터널 발파 현장을 함께 구경하러 간 수린과 성민, 그리고 친구들은 숲 속에서 이상한 동굴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빛이 나는 알을 찾아낸다.

한 친구가 보름달이 뜨면 시간을 잡아먹는 요괴가 출현한다는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어린 성민은 호기심에 알을 깨뜨린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시간이 멈춘 세계를 구현한 장면이다.

수린을 제외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멈춘 시간 속에 갇힌다. 그곳은 마치 정지화면을 보는 것 같다. 담벼락에서 뛰어내리던 고양이는 공중에 정지해 있고, 집에서 TV를 보던 부모님들은 TV 앞에 멈춰있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아이들이 손으로 물건을 옮기면 무중력 상태처럼 물건들이 공중을 떠다닌다.

시간이 멈춰 버린 곳에서 소년들은 신기해하며 피자도 마음껏 먹고 만화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지만, 점차 외롭고 쓸쓸함을 느끼며 나이를 먹어간다.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엄태화 감독은 ‘가려진 시간’이 첫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전작 ‘잉투기’로 한국 영화계에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받은 엄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신인다운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낸다.

특히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어떤 결말로 끝날까 궁금하게 만든다.

엄 감독은 큰 파도 앞에 성인 남자와 소녀가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이 담긴 한 장의 그림에서 이 영화의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남자와 소녀가 어떤 관계였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가려진 시간’이라는 하나의 퍼즐로 완성됐다.

이 작품은 판타지이면서도 사회 현실에 한쪽 발을 딛고 있다.

뒤틀린 시간 속에 실종된 아이들의 모습과 이들을 대대적으로 수색하는 모습은 1991년 발생한 ‘개구리 소년’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가 연상되기도 한다.

엄 감독은 1일 시사회 후 열린 간담회에서 “현실과 비현실이 충돌하거나 서로 영향을 미치는 소재에 평소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직접 한국 사회를 드러내려는 의도는 없었다”면서 “그러나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다”고 했다.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큰 정서는 믿음이다. 어느 날 30대가 돼 나타난 성민을 유일하게 믿어주는 사람은 오로지 수린 뿐이다. 또 그런 수린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강동원은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믿음과 순수함을 그린 인간에 대한 영화”라고 강조했다.

강동원은 30대이면서도 10대의 감성을 지닌 쉽지 않은 캐릭터를 영리하게 해냈다. 소년이 갑자기 어른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그의 사연을 아는 관객들도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적정선을 찾아가며 연기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년의 순수함을 간직한 그의 외모도 한몫했다.

여주인공인 신은수는 2002년생으로 강동원과 스무 살 차이가 나지만, 이 영화가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감정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가 판타지이면서도, 가슴 한 쪽에 아련함을 남기는 것은 신은수의 역할이 컸다. 300대 1의 오디션을 뚫고 캐스팅됐다고 한다.

영화 속 주 무대인 화노도에 숨겨진 작명의 비밀은 섬 이름을 거꾸로 읽으면 알 수 있다. 11월 16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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