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철호 <시인·충북예총 회장>

조성훈- 나는 이 이름만 뇌여도 옷깃을 여며야할 사람이다.

나는 이 이름과 얼굴을 떠올리면 말과 글의 표현으로가 아니라, 먼저 뇌리와 가슴에 파장이 이는 것을 느끼고 잠시 숨을 멈추어야 하는 사람이다. 내 가족들에게 어떤 일이 있을 때 전해지는 뇌파와 심장의 고동이 이와 같을 것이다.

조성훈-그렇다. 특별하게 위세를 떨쳐본 적도 없는 이 이름. 앞줄에 나서지 않아도 훤칠한 외양처럼 눈길을 끌던 이름. 어느 조직, 어느 단체에서도 필요했던 그 이름. 시장도 국회의원도 되기를 바랐던 사람들에게 번번이 낙선의 소식만 전하고도 눈빛 흔들림이 없던 이름.

남의 일을 돕는 일에서는 그 모습은 의연하여 빛났고, 불행과 재난이 있는 곳에서의 정황파악과 이에 대한 대처는 언제나 최상이었다는 그 이름.

76년 생애를 살면서 가장으로, 단체의 책임자로 절반 이상을 누렸으나 가진 것 보다 주는 것이 많아 보는 이들을 미안하게 했고, 늘 밝고 맑은 표정이어서 주변을 안도시키던, ‘종교인이면 저 정도는 되어야’라고 뭇 사람들이 믿어주던, 그러나 이제는 이름 앞에 고(故)자를 붙여야 예의인 그리운 사람 조성훈-.

나는 ‘조 선배’(나는 늘 그렇게 불렀다)님과 몇 가지의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 중 잊혀 지지 않는 일 중의 하나.

대략 30여 년 전 연합통신에 있을 때의 어느 날 밤의 이 일은, 조 선배님을 퍽이나 황당하게 했을 것이고 그 일 이후 난 용기와 결단력 있는 조 선배님의 진면모를 보게 된다. 기사마감을 겨우 하고 난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서울에서 온 사람인데 전할 물건이 있어 상당공원 벤치에서 기다린단다. 저음으로 천천히 말하고 있으나 피로감에 젖은 듯한, 어디서 들었던 듯 싶은 음색인데 짚이지 않는다. 궁금증을 안고 공원 후문 쪽 컴컴한 곳에 이르는데 “조 형-나요”라며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운다. 김지하였다. “김 형- 이 밤에…” 그러자 김지하는 입술에 검지를 댔다. 조용히 하라는 사인이다.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모든 것을 알아챘다. 쫓기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아도 얼굴이며 반코트가 찢겨진 것이 산속을 누비며 온 것이 분명했다. 얼마 전부터 현상금이 붙었고, 이번에 검거되면 꽤나 고생을 할 것이 뻔한 인물이 내 앞에 있는 것이다. 밤 10시가 넘었다. 일단 숨겨줄 곳을 찾아야 했다. 한적하고 외부인 출입이 없어야하는데…. 순간 적십자사 숙직실이 떠올랐다. 그렇다. 조 선배라면 들어줄지 모르고, 설사 들어주지 못한다 해도 ‘김지하가 청주에 잠입했다’는 발설은 안심할 수 있을 것이었다. 댁으로 전화를 걸었다. 마침 직접 받으셨다. “조 선배님-오적(五賊)시를 쓴 김지하 시인을 아시죠? 지금 전국에 지명수배 됐고 현상금까지 붙었지요. 그 김지하 씨가 지금 저하고 같이 있어요. 숨겨는 줘야하는데 적당한 곳이 없어서 적십자사 숙직실이 어떨까 하는데요. 숙직자를 집으로 들여보내시면 우리가 들어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대략 이런 내용으로 부탁을 드렸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조 선배님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망설임도 없이 ‘알았다, 조금 기다려라. 숙직자를 들여 보내겠다’고 담담히 답했다. 잠시 후 조 선배님이 나타나셨다. 김지하 씨와 첫인사를 나누면서 조 선배님은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이니 몸조심을 잘 해 달라” “성원하는 국민들이 많으니 용기 잃지 말아 달라”고 격려했다. 조 선배님이 들어가신 후 김 시인과 나는 밤새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 중에 조 선배님의 빠른 조치와 격려가 원주에서 청주까지 산길을 통해 숨어오느라 지쳐있던 김 시인이 ’피로가 싹 가시는 감동‘이었다며 고마워했다. 나는 지금도 그 당시의 상황이 재연된다면, 현상금이 붙은 수배자를 감춰주면 좋겠다는 후배의 요청을 흔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조 선배님처럼 위험을 감내하면서 주저 없이 결단을 내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를 생각해 보곤 한다.

조성훈- 조 회장, 조 사장, 조 연맹장, 조 이사장, 조 고문, 조 총재, 조 지부장…. 등 무수한 직함들이 조 선배님을 수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조 선배님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부드러운 외양과는 다른 분명한 시대적 자각과 철학과 정의감의 내면세계임을 우리는 안다. 그 많은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성경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리던 조성훈 선배님.

우리 곁을 떠나신지 어느새 2년-. 어두운 시대, 어려운 나라에서도 빛과 소금 되셨으니, 그 값진 생애 돋보여 축복의 그 나라에서 더욱 영생하심을 우리는 믿는다.

<매주 월·수·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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