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최씨의 비상식적인 그간 행보가 국민들로부터 더욱 지탄을 받는 것은 거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깊숙히 관여했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히 메가톤급 스캔들이라 할만한 사건에서 ‘가교’ 역할을 했던 이가 안종범 전 청와대정책조정수석으로 밝혀지고 있다. 또 검찰조사를 받으며 혐의 대부분을 부인해 긴급체포된 뒤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인 최씨에 대한 법원의 영장발부 여부는 오늘 밤 결정된다. 방대한 부문에 걸쳐 전횡을 저지른데다, 하늘을 찌르는 국민적 공분의 대상이 된 최씨에 대한 영장발부는 필연으로 보인다. 안 전 수석도 2일 검찰에 출두한 뒤 혐의를 부인하다 긴급체포됐다. 청와대 ‘왕수석’이라는 권력을 잃은 지 사흘만의 일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 딱 맞는 말이다.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씨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정부 예산은 5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국가 브랜드사업에서 문화·체육 관련 사업까지 전방위에 걸쳐 권력형 비리가 저질러졌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권들어 지금까지 치면 조(兆) 단위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도 내놓고 있다. 그것은 모두 국민의 혈세에서 나온 것이다.
검찰이 최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내건 혐의는 직권남용과 사기미수 혐의다. 일각에서는 ‘뇌물죄’보다 형량이 적은 혐의 적용에 대한 반발도 있지만, 영장청구를 위한 것인만큼 향후 수사는 지켜볼 일이다.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받았던 검찰도 조직의 명운이 걸린 사안인만큼 철저하고 엄정한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박 대통령의 행보다. 대통령의 책임론이 비등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안이한 대처는 큰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그것은 나라에 더욱 큰 비극이 될 수 있다.
김병준 총리 지명 같은 일을 되풀이해선 안된다. 그의 사람됨이나 정치적 면면을 들여다보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뜩이나 꼬인 정국에 ‘불통 인사’로 밀어붙이니 국민과 야당의 반발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역대 최악으로 떨어졌다. 내일신문과 (주)디오피니언의 발표에 따르면 9.2%. 국민의 90% 이상이 대통령을 불신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젠 대통령 하야까지 이야기가 나온다. 절반 이상이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현실의 엄중함을 대통령은 깊이 느껴야 한다.
해법의 ‘우선 순위’를 정확히 매겨야 한다. 대통령이 우선 해야 할 일은 검찰 수사를 받는 일이다. 안 전 수석의 ‘대통령 지시’ 발언을 봐도, 또 대통령 스스로도 최순실과의 관계를 시인했듯, 철저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사죄해야 한다. 그것이 파탄지경에 이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그나마 덜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제 조건이 있다. 정직하게 가감없이 답변해야 한다. 그 이후의 일은 국민들의 판단에 달렸다. 하야든, 탄핵이든, 아니면 남은 임기 보장이든. 실체적 진실을 내놓는 것만이 더 큰 비극을 막는 시발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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