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함기석

검은 구두

 

함기석

 

공원 벤치 밑에 구두 한 짝

새처럼 잠들어 있다

벤체 위엔 남자, 신문지를 덮고 잠든 둥근 둥지

 

죽은 걸까, 꿈꾸는 걸까

검은 구두 속에서 하얀 물감 빛깔의 새벽이 흘러나와

남자의 몸을 수의처럼 감싸고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들 겨드랑이 사이로 샘물이 밀려와

한 방울 한 방울 신문지에 떨어지고

어린 꽃들이 단발머릴 흔들며 웃는다

 

누구의 입일까 저 검은 새

구두 속에서 흰 말이 날아오르고

밤사이 대기가 흘린 꿈이

남자의 입술 끝에 투명한 핏방울로 맺혀 있다

 

△시집 ‘오렌지 기하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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