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종 <충북예술고 교장>

아침 출근길, 나의 마지막 가르침 터가 될 우리 충북예술고 정문에 들어서면 큼지막한 플랫카드가 붙어있다.

“알파고는 못하는 예술, 우리가 한다”

얼마 전 학생들에게 공모하여 당선된 작품이다. 우리 충북예술고 학생들은 매일 이 문구를 보고 자긍심과 성취의욕을 불태우며 등하교를 하고 있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 어떤 첨단화된 기계적 논리나 과학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개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무한지평을 열어가는 예술세계의 심오함을 가장 함축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창조적인 예술인 육성’ 이라는 기치 아래 모여든 우리 충북예술고 300여명의 예술영재들이 오늘도 교정 곳곳 진선미의 예술세계에서 자신만의 꿈과 끼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나는 생기발랄하고 행복해하는 충북예술고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젊은 시절 가슴 아팠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내가 30대 후반 어느 남자고등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성악으로 음대를 진학하고 싶어 하던 1학년 학생이 있었다. 학생의 의지도 확고했고 음악적 재능도 풍부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면소재지에서 소작농으로 근근이 끼니를 이어가고 계시고 먹고 살기에 바빠 자식과 진로, 장래 직업에 대한 대화가 일체 없었으며 형제가 있었지만 조그만 도움도 줄 수 없는 처지였다. 더구나 방학이면 본인이 공사장에 나가 일당을 벌어 자취를 하며 책을 사서 공부하는 처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예술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으론 그 길이 외롭고 힘들다는 것을 몇 번이고 이야기를 해도 음대를 진학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그래 한번 해보자! 굳은 결심을 하고 부모님을 직접 찾아뵙고 학생의 의지를 설명하니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니 선생님이 알아서 지도 바란다는 말씀을 몇 번이고 하신다. 물론 금전적인 도움도 전혀 줄 수 없다는 말씀과 함께….

나는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음정연습 교본인 ‘코르위붕겐’을 사서 학생에게 주고 음정 연습과 기본적인 이태리 가곡부터 시작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음악에 대한 끼와 열정이 있었고 성실성을 겸비한 학생이라 실력은 그야말로 일취월장이었다. 2학년에 진급하고 다른 학생들에 비해 어느 정도의 실력인가 하는 궁금증과 그 학생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넓은 안목을 길러주고자 각종 대회에 출전을 시켰다. 이때부터 나는 주위의 동료와 후배들에게 뻔뻔해지기 시작하였다. 이유인즉 성악을 하면 반주가 필수인데 그 학생의 형편상 반주에 대한 사례비를 줄 수 없었기에 나는 강압 반 회유 반 동료나 후배들에게 매달렸다. 희생과 봉사라는 미명을 내걸고 점심 한 끼 또는 손수건 한 장으로 사례비로 대신하곤 했다. 고맙게도 동료 후배들이 진정성을 받아들이고 도와주어 무난하게 대회를 치르곤 하였다.

대회 때마다 입상을 하여 무료 반주를 해주던 후배들에게도 조금은 덜 미안하고 위안이 되기도 하였다. 그때 지금과 같은 충북예술고가 있었더라면 등록금과 반주에 대한 부담감도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학생은 결국 서울의 모 대학교 1년 장학생으로 합격하여 눈물로 기쁨을 표현하던 때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뒤 나는 근무지를 옮겨 청주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그 친구가 군대 입대한다고 전화가 왔고 군 생활 중 종종 전화 연락이 되곤 했다. 하지만 제대 후 등록금 마련을 위해 일을 한다고 씩씩하게 통화 후 그 친구와의 연락은 그것으로 끝이었고 나중에 학교에 복학하지 않고 그만두었다는 소식에 몇 날 잠을 못잘 정도로 가슴이 아렸던 기억이 오늘에야 새롭다.

내가 진학지도를 잘못했다는 자괴감에 한동안 교직에 대한 회의도 느꼈었다. 세월이 흘러 충북예술고 학생들의 일상을 보며 그때의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것은 예술영재들의 환경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와 예술의 힘은 인류역사를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 아무리 막강한 무력과 군사력, 그리고 광활한 영토를 지녔어도 문화와 예술의 향기가 없었던 민족과 국가는 쇠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역사가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막강한 군사력을 지녔던 몽고족 만주족이 세웠던 원나라 청나라가 결국 한족의 우수한 문화 예술의 힘에 굴복 당했던 것이 그 단적인 예다. 21세기는 문화예술의 시대이다. 문화 예술이 상품이고 나라의 기간산업이며 국가경쟁력이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기위해서는 문화예술인이 많이 배출되어 나라의 위상을 높여 나가야 함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며 시대의 요청이다. 나는 미래의 문화예술계를 이끌어나갈 우리 충북예술고의 학생들을 보면서 희망과 기대에 가슴이 부푼다.

<매주 월·수·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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