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69) 농민의 장례가 지난 5일 민주사회장으로 엄수됐다.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지난 9월25일 사망한 지 41일 만이다. 고인의 시신은 장례를 마친 다음날인 6일 광주 망월동 5.18 구묘역에 안장됐다.
서울 명동성당에서 치러진 장례미사는 약 1시간 동안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집전으로 봉헌됐다. 유족과 백남기투쟁본부 등 시민단체 관계자, 정치권 인사 등 1000여명이 참석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염 추기경은 미사에서 “백 임마누엘 형제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슬픔에 빠져 있다”며 “형제님의 용기와 사랑을 남아있는 우리가 이어나가 좋은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강론에서 “임마누엘 형제가 우리 곁을 떠났다기보다 이 땅의 민주화와 농촌 현실에 무관심한 우리가 떠밀어 떠나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이런 현실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족 대표 발언에 나선 백씨 장녀 도라지씨는 “살아생전 아버지가 명동성당에서 세례명(임마누엘)을 받았다”며 “장례미사도 여기서 치르게 돼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매우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사가 끝난 후 백씨 시신은 지난해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 당시 고인이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장소인 종로구청 사거리에서 노제를 지낸 뒤 같은 날 오후 2시 광화문 광장에서 영결식이 열렸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무소속 김종훈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백남기투쟁본부는 결의문을 통해 “오늘 우리는 백남기 농민을 보내며 끝나지 않은 투쟁의 시작을 선포한다”며 “생명을 담은 물로 사람 죽이는 무기를 만들어 쏜 사람, 쏘라고 시킨 사람, 이 모두를 진두지휘한 책임자까지 단 한 사람도 예외없이 처벌하겠다. 국가 폭력없는 세상, 국민을 살리는 국가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백남기 사태에서 압권은 단연 정부의 ‘몰염치’였다. 고인은 분명 경찰이 쏜 직사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책임자 처벌은 커녕 누구하나 나서 사과 또는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고, 그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병문안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인은 누가봐도 명확한데도 부검을 시도하는 등 고인을 두번 죽이고 유가족을 괴롭히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생명처럼 소중하고 귀한 것은 없다. 그런만큼 사람 목숨은 협상이나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인이야 어떻든 목숨을 잃었다면 일단 머리부터 조아려 조의를 표하고 보는 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그러하질 않았다. 냉혈한 모습만 보였다. 모든 것을 민중총궐기에 참가해 시위를 벌인 고인에게 돌렸다. 오히려 사인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기 위해 부검을 강행하려 했다. 적반하장이다. 우리는 박 정권의 적반하장 하나면 족하다고 본다. 죽음을 두고 엉뚱한 궤변을 늘어놓는 파렴치한 행위를 우리는 봐 오고 있다. 인간의 탈을 쓰고 할 짓이 아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