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선 (시인)

▲ 노창선 (시인)

저녁 햇살을 받고 낙엽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은행나무 아래는 노란빛으로 물들기 전 언 채로 수북이 쌓인 잎들이 애처로워 보인다. 어느새 가을이 깊어져 겨울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서성이는 사람들. 서성이는 마음. 바람 부는 저녁에 제멋대로 흩날리는 곱게 물든 낙엽을 보며 한편으로는 아름답다고 느낀다. 저 아름다운 것들의 끝은 어딜까.
  요즘 마음 달래며 살아가기가 힘겹다. 너무도 충격적인 사건들. 연일 터져 나오는 뉴스가, 소문으로만 떠돌던 루머가 실체의 모습을 드러내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져 내린다. 평소 같으면 그 중 작은 사건 한 가닥만 하여도 대형사고로 기록될 판인데, 대통령이 검찰의 조사인지 수사인지를 받아야 할 지경이라니 국민 누군들 마음 달래며 살아가기가 쉬운 일일까. 하늘이 무너져 내린 듯하다. 그래도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숨통을 열어준다.
  미디어에 의한 가상현실의 시대에 대통령의 권력은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세대 전의 권력구조와 행태가 오늘에 와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국민들은 점점 일자리를 잃어가고 살기 어려워져 가고 있는데 기업들을 겁박하고 재단출연금을 받아내고 그것을 다시 교묘하게 사유재산으로 빼돌리는 수법의 규모가 엄청난 것이다. 이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머리도 식힐 겸 바다를 보러 갔다. 보아도 보다도 끝이 없는 제주 바다. 그 풍경에 머릿속을 비우고, 씻어내고, 헹궈내고……… 안 된다. 이건 무슨 증상일까.
  아무튼 몇 달째 비워져 있던 해수욕장을 바라보면서 나도 저 작은 모래알들 중 하나가 되어 섞여들어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나 마음 속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말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화계의 황태자, 문화융성, 평창 동계올림픽. 문화체육의 가치는 돈으로 계산될 수 없다는 점이 국정농단의 타켓이 되었던 것일까. 바닷물에 씻기는 모래알들과 수없이 밀려왔다 부서져 가는 파도를 보며 나의 마음도 자연의 일부가 되는 듯 투명해진다. 마음의 유리창을 바다 풍경으로 바꿔달면서 잠시나마 머리를 비울 수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청정해역이라는 함덕해수욕장의 흰 파도와 옥빛 물결의 움직임과 차르릉 거리는 파도 소리들. 그것들이 오래 마음속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며 작동해 본적도 없는 스마트폰 동영상의 아이콘을 누른다. 2분간의 촬영은 몹시 길게 느껴진다. 한 자리에 멈춰서 있어도 무수히 변화 하는 바다의 풍경과 파도 소리. 천천히 움직이면서 풍경을 옮겨 본다. 괜찮다. 카톡으로 지인들에게 보내준다. 2분간만이라도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맑아진다. 이렇게라도 이 시대에 받는 상처를 치유해보고 싶다.
  며칠 전 뉴스에서 백악관 핼러윈 파티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오바마 대통령이 지역 학생과 군인가족 등 4000명을 초대한 자리라 한다. 그 중에 한 아이가  절름발이 오리인 레임덕 분장을 하고 등장한 것이다. 머리와 팔에 붕대를 감고 노란 오리의 캐릭터가 나타나자 오바마 부부는 박장대소를 하고 사탕을 나눠주며 함께 즐겼다는 것이다. 오바바는 최근 지지율이 50%를 넘어 최고치 55%까지 기록했다 한다. 참 부러운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은 5%. 국정농단 관련 기사들이 해외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국격이 떨어져 재외 교민들은 고개 들고 다니기 힘들 만큼 부끄럽다고 한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의견이 분분하여 앞이 보이지 않는다. 블랙홀. 온 국민들은 카오스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대통령은 수사를 받겠다고 했다. 책임을 지겠다고도 했다. 그러려면 그 과정이 엄정하게 법 앞에 공평하게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진행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현직에 있으면서 수사를 받는다는 일도 제한적인 요건들이 많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들은 현대사 속에서 대통령들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다. 두 분은 감옥에 갔고 한 분은 자살을 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현직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그게 잘 될까. 국민들은 참으로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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