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응 <증평문화원장>

시골 초등학교 교감 때의 일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때(12~3년 전)만 해도 초등학교에 아동저축이라 해서 매주 어린이들에게 푼돈을 모아 저축을 하게 한 적이 있다. 지역이다 보니 저축 금융기관이 농협과 우체국뿐이어서 한 곳에만 계속 정하지 못하고 격년제로 1·3·5학년은 우체국, 2·4·6학년은 농협으로 아동저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매주 화요일이 저축일이어서 그 날만 되면 우체국 직원과 농협 직원이 10시경에 교무실에 모아 놓은 저금주머니를 회수해 갔다. 화요일이면 한 농협 아가씨가 저축 담당 계원이어서인지 저금주머니를 회수하러 오곤했는데 11월, 12월이면 날씨도 춥고 해서 교무실 보조원에게 따끈한 차라도 한잔 대접하게 하였다. 그 농협 아가씨는 키도 그리 크지 않고 교무실을 들어 올 때 그렇게 수줍어하고 여간 부끄러움을 타는 것이 아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협에 입사를 했다고 하는데 이제 나이는 열아홉이나 스무 살 정도였을 것 같았다. 그 농협 아가씨를 볼 때마다 저 정도 아가씨라면 며느리 감으로 괜찮겠다 싶어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쓸 데 없는 말을 걸곤 했다.

그때 아들은 대학을 다니다 군대에 입대하여 부산 수송부대에 있을 때였다. 그러다가 그 학교에서 이웃 학교로 전출을 와서는 까맣게 그 농협 아가씨 생각은 잊어버리고 착한 아가씨만 보면 아들 생각과 며느리 감을 연결 짓곤 했다.

아들이 제대를 하고 대학에 다시 복학하여 졸업하는 해는 취업 준비를 한다면서 매일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농협 입사 시험을 친 것이다. 1차에 합격을 하고 2차 면접까지 최종 합격을 한 다음에 첫 발령지가 전에 보았던 그 농협 아가씨가 근무하던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아들은 훤칠한 키에 뽀얀 피부로 농협 아가씨들 눈에 띄어 인기를 끈다는 얘기를 들었고, 나중에 같은 농협 아가씨와 사귄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들이 사귀는 농협 아가씨가 옛날 시골 학교에 근무할 때 아동저축을 회수하러 왔던 바로 그 아가씨인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며느리는 그 농협에서 아들하고 4, 5개월 같이 근무하다가 다른 농협으로 전출을 했는데 그것이 결혼까지 가게 된 계기가 됐다고 한다. 같이 계속 근무를 했으면 별로 가깝게 될 수가 없었는데 떨어져 있다 보니 서로 자주 전화도 하게 되고 안부도 묻게 되어 가까워 졌단다. 사실 며느리는 먼 곳으로 출근할 때 전화국에 다니는 외삼촌 댁에서 자취를 하며 동료 차를 얻어 타고 출 퇴근을 했다는 것도 나중에 들은 얘기이다.

시아버지감인 내 마음에 쏙 들었던 그 농협 아가씨가 며느리로 온다는 데 반대할 이유도 없고 농협 커플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그렇게 해서 결혼할 때 아들은 서른 살, 며느리는 스물다섯 살로 1 년 후에 그 며느리는 첫 손자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연년생으로 손녀도 낳았다.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며느리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나는 시아버지로 그런 며느리에게 주는 답례의 선물로 며느리가 산휴 휴가를 마치고 출근할 때 소형 승용차를 구입해서 주었더니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첫 손자를 낳아 준 며느리에게 더 큰 것을 해 주고 싶은 심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고, 며느리가 지금도 그 승용차로 직장에 열심히 출퇴근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범부의 큰 기쁨이다. 나와 며느리의 이 잊을 수 없는 인연을 생각할수록 나는 부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매주 월·수·금 게재>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