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양파껍질은 계속 벗겨진다. 그럴때마다 국민들은 어이없어 하고  분노만 더 커진다.
찌라시에나 나올 법한 얘기들이 눈 앞에서 사실로 드러나고 있으니 아무리 군자라도 인내하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국민들이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착잡하고, 슬프고, 어이없고, 분노하는 것은 사인(私人)에 불과한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청와대로부터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고 국정 전반에 관여한 사실 때문이다. 그중엔 민감한 외교안보사안도 들어 있고 이명박 정권이 북한 국방위원회와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세차례나 접촉했다는 극비사항까지 들어 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묵인 내지 비호 아래 상상할 수 없는 비리를 저지르며 국정을 농단했다.
국민들은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 친·인척들의 비리를 수없이 봐 왔다. 전 대통령 중에서 친·인척 비리에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들이나 형제나, 처가쪽 형제 등 대형 비리에 연루돼 감옥살이를 했다.
다행히도 박 대통령은 이들로부터 학습효과를 받은 영향인지 아직까지 대어급 친·인척 비리가 드러난게 없다. 박 대통령은 두 동생의 청와대 출입을 막을 정도로 자신 관리에 엄격했다. 그래서 국민들은 그를 더 믿었다. 정치생활 하면서 크게 신세 진 사람도 많지 않을 거라는 점도 그의 통치력에 더 믿음을 줬다. 
또 부모를 총탄에 잃은 측은지심도 작용했고 특히나 국민적 추앙을 받는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꼭 빼 닮은 외모는 ‘무조건 지지’의 바탕이 됐다. 30%의 콘크리트 지지율 근간이다.
국민들은 박 대통령이 남의 말 하듯 유체이탈 화법으로 현안에 대해 요리조리 빠져 나가도 원칙과 신뢰를 중시하는 대통령이어서 그렇지 하고 이해하고 그냥 넘어갔다. 서민 살림살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행사때마다 디자인이 같은 옷을 갈아 입고 나와도 노골적으로 탓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 박 대통령의 처지는 말이 아니다. 중·고생들까지 거리로 뛰쳐 나와 하야를 요구할 정도로 국민적 공적이 됐다. 그 원인은 국정을 소위 민영화했기 때문이다.
민영화(民營化)는 국가나 공기업의 재산 등을 민간자본에 매각하고 그 운영도 맡기는 경영기법이다. 1969년 한진그룹이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대한항공으로 개명, 민영화한 게 대표적이다. 2002년 한국담배인삼공사가 KT&G로 사명변경과 동시에 민영화됐고, 산업은행이 소유하고 있던 주식을 모두 매각해 민영화가 된 포스코도 그중 하나다.
충북에서는 정부가 청주국제공항을 민영화하려다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전례가 있다.
이런 개념의 민영화가 최순실이라는 사람을 매개로 대한민국 국정에서 벌어졌다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의 언론보도를 보면 박 대통령은 검증과 위임 과정을 거치지 않은 최씨에게 사실상 통치를 맡겼다. 최씨가 청와대를 자유롭게 드나든 게 문제가 아니다. 박 대통령은 친·인척과의 교류마저 끊긴 상태에서 개인사를 도와 줄 사람도 없어 의지하며 도움을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 대통령의 불행한 인생사를 보면 40년을 곁에서 지켜 준 그에게 의지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어쩔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최순실 게이트는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대통령이 사유화해 최씨에게 사실상 국정 전반에 대한 판단을 맡긴 것에서 시작한다. 국민적 공분에 불을 지른 두차례의 면피성 사과나 총리지명 절차 반발 등은 그 뒤의 문제다. 막강한 권력을 쥔 그는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했다. 국정 판단을 사인에게 의존한, 다시말해 ‘국정 민영화’한 박 대통령이 가져 온 재앙이다.
시중에는 안보위기를 자초해 판 뒤집기를 시도할 거라는 풍문도 돈다. ‘적대적 공생’이 남·북 기득권 세력의 전유물이라는 사실은 그간의 정권들이 입증해 줬다. 위기 돌파용으로 개헌을 들고 나왔듯이, 이번엔 더 강력한 ‘안보장사’를 꺼내 들까 봐 자못 신경이 쓰인다. 권력이 또 다시 국민을 불행하게 할까 봐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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