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애(논설위원/충북대 교수)

▲ 권수애(논설위원/충북대 교수)

지난 주말 남한산성 주변에 위치한 한 식당을 찾아 가는 길, 차창으로 보이는 가로수와 산자락에 알록달록 곱게 물든 단풍들이 가을의 정취를 전해주었다. 하행선 도로는 곳곳에서 정체도 있었으나 상행선을 달리는 우리는 창밖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을 만큼의 속도는 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며칠 전 한 모임에서 가을 산행의 즐거움을 피력하면서 극구 함께 등산하기를 권유하던 분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얼마를 달리다 보니 한적한 곳에 작은 집 한 채가 보이고 길안내가 끝났다는 네비게이션의 안내가 들렸다. 큰길가에서는 보이지 않던 작은 숲속에 아늑한 쉼터가 있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자연을 살려 지은 집은 정성스럽게 가꾼 야생화와 여러 그루의 유실수, 관상수들과 잘 어우러져 있었다.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이 하도 많아서 늘어진 나뭇가지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중후함이 배어나는 주인 부부가 그날의 주인공 부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마치 오래 만에 만난 형제간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부친의 생신을 축하하는 직계가족만 모이는 자리였지만, 생신을 맞이하신 분이 우리 부부에게는 집안 어른으로써 여러모로 각별한 지원과 배려를 해주셨던 분이라서 특별히 함께 할 것을 부탁한 터였다. 고위공무원으로서 무사히 정년을 하시고도 25년 이상의 세월이 흘렸지만 흐트러짐 없고 단정한 차림에 여전히 멋있는 기품을 유지하고 계셨다. 식당의 주인은 공직에 계실 때 함께 근무했던 인연으로 한 형제처럼 지내는 사이로 보였다. 한 때 정부 요직에 발탁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 부부는 함께 장고한 끝에 그 길을 선택하지 않고 평범한 길을 걷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해서 순탄하게 공직을 마무리 할 수 있었음에 서로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그 길을 택했다면 어쩌면 권력과 명예와 재물을 누릴 수도 있었겠지만 직분에 합당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희생도 크고 무엇보다 적절한 처신을 하기가 벅차 선택하지 않았다고 했다. 자리가 주는 이로움에 앞서 막중한 책임을 중시해온 그 어른은 대통령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으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진 최근 정세가 심히 걱정스럽다고 하시면서 문선(중국 양(梁)나라의 소통이 만든 제·양나라의 대표적인 시문을 모아 엮은 책)의 군자행(君子行)에 나온 "군자방미연 불처혐의간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君子防未然 不處嫌疑間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에 얽힌 고사를 들려주셨다.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 위왕이 즉위 9년이나 되었지만 국정을 제멋대로 휘둘러 나라를 어지럽히는 간신 주파호를 보다 못해 후궁 우희가 위왕에게 주파호를 내치고 북곽선생 같은 어진 선비를 등용하라고 아뢰자, 주파호는 우희가 북곽과 전부터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모함하여 위왕은 우희를 하옥하고 관원에게 철저한 조사를 명하였으나 주파호는 관원을 매수해 억지 죄를 꾸며내 조사를 방해해서, 위왕이 우희를 불러 직접 묻게 되었다. 우희는 자신은 결백하며 다만 죄가 있다면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瓜田不納履)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李下不整冠)고 했듯이 남에게 의심받을 일을 피하지 못했다는 점과, 옥에 갇혀 있는데도 누구 하나 변명해 주는 사람이 없는 자신의 부덕함에 있으니, 죽음의 벌을 내리더라도 더 이상 변명하지 않겠으나 주파호와 같은 간신만은 내쳐달라"고 하였다. 우희의 충심어린 호소를 듣고 위왕은 주파호 일당을 벌하고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잡았다고 한다.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이란 말은 정부와 국민을 대신해 일하는 사람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 간에는 한 잔의 커피도 문제가 되는 청탁금지법의 발효와 더불어 이번 최순실 사태는 우리 사회가 청렴을 최우선시하는 풍토가 다져지는 새로운 전환기가 되고, 온 국민의 염원처럼 어서 빨리 국정이 안정되어 국가 경제와 안보가 확고해지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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