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파문’으로 촉발된 국정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8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국회가 추천한 총리를 임명해 달라는 야권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공식 밝혔다.
이제 국정 안정화의 고민은 여야 정치권의 몫으로 던져졌다. 야권에선 박 대통령의 권력 포기 의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들어 이를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미 내치를 담당하는 책임총리제의 역할론과 총리 인선에 대한 하마평이 나도는 마당에 이 같은 논의를 막을 수도 없다.
공을 넘긴 박 대통령이 새 총리의 권한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고 야권이 주장하며 ‘2선 후퇴론’으로 맞서고 있어 당분간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정치권에선 새 총리의 권한과 내각의 성격 등에 대해 그야말로 백가쟁명식 해법이 난무하면서 본격적인 협상에서 격론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국정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또다시 여야가 자리싸움만 하는 모습으로 비쳐져선 안 될 것이다. 국회도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민들이 집행부를 견제해 나라를 잘 이끌어 달라고 뽑아준 준엄한 지상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사실상 ‘직무유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이상 실망한 국민들을 분노케 하지 말고 하루 빨리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거국내각 구성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거국 중립 내각의 성격은 크게 과도정부와 책임총리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신임 총리가 일종의 과도정부를 꾸리고 대통령은 전권을 넘긴 채 사실상 퇴진에 가까운 2선 후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여기에는 조기 대선론도 포함된다.
민주당 소속의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등 주로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는 인사들이 큰 틀에서 이런 입장이다.
반면 국방·외교 등 외치(外治)는 대통령에게 그대로 맡기고 내치(內治)를 전담하는 책임 총리가 알맞다는 목소리도 있다. 주로 여권 인사들이 이런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로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며 서로 뒤섞인 주장도 존재한다. 결국 핵심 쟁점은 대통령이 권한을 얼마나 내려놓을지에 대한 입장 차이로 귀결된다. 또 이에 따라 총리 적임자를 고르는 기준도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여권에선 현 국면에서 총리 권한의 법적 규정보다는 정치적 의미 권한이 훨씬 중요하다는 애기가 나온다. 헌법에 총리의 권한을 내각 통할권, 국무위원 제청권, 각료해임 건의권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법 규정에도 없는 ‘국회 추천 총리’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를 거친다면 사실상 총리 임명권이 국회로 넘어온다는 점에서 법적 권한의 자구에 구애됨이 없이 정치적으로 막강한 권한이 총리에 부여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해석이다.
일단 총리 인선의 주도권을 야당이 쥐긴 했지만, 야당의 내부 사정이 각기 다른 계파별 셈법으로 난마처럼 복잡한 가운데 여당과 청와대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야는 거국내각이란 설립취지에 맞게 초당적으로 협력해 실망한 국민들을 더 이상의 상실감에 빠지게 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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