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님 찾아 물길 3만리를 달려온 허황옥은
처음 내린 가락국의 바닷가 언덕에서
도착 선물로 바지를 벗어 주었다는데,
늦가을 비가 밤새 뿌리고 간 아침,
겨울의 뜨락으로 내려선 단풍나무는
치마를 벗어 바닥에 곱게 깔아놓았다.
알록달록 수놓은 황후의 비단치마를
한 동안 황홀한 마음으로 매만지다가
아득한 남쪽 하늘을 돌아다본다.
제왕이 아닌 내게 남은 일이란,
치마를 다시 입혀주러 임자가 올 때까지
담벼락에 기대 빗자루를 깨우지 않는 것뿐.
△시집 ‘정신의 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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