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회인현 옛 지도에는

동헌 옆에 나무가 하나 그려져 있다.

방금 전, 내가 그려 넣은 것이다.

100살도 더 먹었을 그 은행나무는

복개된 망천골 옆에 혼자 남아

옛 건물들을 먹어치운 낯선 풍경을 지켜본다.

시멘트 벽돌 스레트 지붕 70년대 창고 모서리에 서서

뿌리의 절반을 콘트리트 바닥에 묻혀 고문당하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유민이거나 충신.

바로 옆의 동헌 자리에 들어선 교회 지붕 위로

간신히 우듬지를 뻗어 올려보지만,

첨탑의 십자가는 한참 더 높아서

욍이 없는 하늘의 소식을 내려 받는다.

광포한 쥐라기의 골짜기에서 건너와

하 수상한 시절을 100년 넘게 지켜본 나무가

회인현 옛 지도에 볼펜자국으로 서있다.

 

△시집 ‘노자의 지팡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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