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허물어진 세월 깊숙이 품은

지상의 큰 자궁이다

 

절집 몸체 걷어내며 멀찌감치 떨어져

한 시대 무심히 해탈한 듯해도

건넌 듯 아니 건넌 듯 엎드린 자리

여기저기 웅크린 시간의 이끼 검푸르다

 

생강나무 사이로 낯익은 바람 굽이치고

무성히 품어오며 우거진 세월

풀잎 끝 돋을새김으로 휘어지며 앉는데

달빛 서늘히 머금고 건너왔는가

불룩한 석탑 훑고 가는 천년의 구름

느릿느릿 비릿한 몸을 푼다

 

들러선 침묵의 두께 위로

망초꽃 웃음소리 펄럭이고

청띠신선나비 한 마리

초록 경전 속으로 든다

 

△시집 ‘창 밖에 그가 있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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