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일에는 길흉화복의 반복으로 인하여 매일 똑같은 일상이란 찾아볼 수 없다. 옥천군 청산면 명티리에서 태어나고 자라 농업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는 필자에게도 단조로운 삶이란 없다. 보청천의 지류가 되는 예곡천의 발원지 팔음산을 배경으로 하여 22가구가 살아가는 명티리 이장을 맡아 고향을 위해 봉사할 수 있음에 작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명티리는 일제강점기에 흑연 광산의 개발로 한때는 40가구가 넘게 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농촌사회가 그렇듯 도시로의 이주와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뜸해진 것이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도 청산면과 상주시 화동면으로 이어지는 팔음재 지방도로는 충북과 경북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 그나마 위안거리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에는 탈이 많다”라는 고사성어로 몇 해 전 선대부터 살던 옛집을 헐고 새로이 집을 짓고 가족들과 함께 많지 않은 농사 거리와 소를 키우며 전원생활에 만족하던 중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기고 말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저녁 무렵 주택 옆에 설치된 화목보일러에 불을 지펴 놓고 방안에서 쉬던 중 옆집에 사는 이웃이 달려와서는 보일러실에서 불길이 치솟는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부리나케 밖으로 나와보니 화목보일러에서 연기와 함께 불길이 보여 집안에 있던 소화기 3개를 사용해 불길이 거세지는 것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소방차가 도착했고 소방대원들의 신속한 화재진압으로 보일러실과 붙어있던 주택으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가 있었는데 하마터면 소중한 우리 가족들의 보금자리를 한순간에 잃을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상황이 끝나고 소방관들이 필자가 사용한 소화기를 보더니 잘했다는 격려와 함께 어떻게 비치하게 됐는지 사연을 묻는 것이었다.

지난 7월이었다. 매월 개최되는 청산면 이장단 회의에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는 옥천소방서 직원이 나와서 모든 주택에는 기초소방시설인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홍보교육을 실시하면서 소화기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었다. 화재 초기 소화기 1개는 소방차 1대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말을 당시에는 반신반의 했었다. 어차피 내년 2월 4일까지는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말에 소화기 3개를 구입해 놨었는데, 이렇듯 유용하게 사용할 줄은 미처 몰랐다.

막상 생각지도 못한 화재를 경험해 보니 소화기야말로 우리들의 안전한 일상생활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장비란 걸 새삼 느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마을 이장으로서 명티리 모든 가구에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단체로 구매해 설치할 예정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을 들먹이지 않아도 충분히 비싼 대가를 치루고 배운 소중한 지식을 주변의 모든 이웃들에게 나눠 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추수가 끝나가고 있다. 가을들판의 풍요로움처럼 집집마다 따뜻하고 행복한 겨울나기를 희망해 본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 최소한의 준비를 해 둬야 할 것이다. 가령 불을 많이 사용하는 겨울철은 물론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를 화재사고를 대비해 가정의 안전 상비약 소화기를 비치하는 지혜를 적극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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