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규(목사)

▲ 김창규(목사)

2016년 11월 12일 오후 2시 서울의 광화문 광장과 대학로 등 도심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세종로와 광화문 광장, 서울시청 광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점점 시간이 흐르고 오후 5시에 이를 무렵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있다가 나왔는지 거리를 가득 메웠다. 각양각색의 팻말을 들고 나온 학생과 시민의 숫자는 파악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피켓은 박근혜 하야와 퇴진으로 물결 쳤다. 기발한 내용의 팻말들도 등장했다. 중·고교생과 심지어는 초등학생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나왔다. 어린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주부들 할 것 없이 거리에는 축제 분위기처럼 풍물놀이와 타악기를 연주하고 북을 치는 한 떼의 무리들이 분위기를 띄운다.
날씨는 따뜻했고 햇볕도 적당하게 분위기를 맞추어 주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얼굴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모습이 그대로 묻어났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국기문란과 온갖 특혜의혹이 속속 드러나면서 박근혜 정권은 이미 국민 마음에서 지워져 있었다. 박근혜 지지도는 5%로 떨어졌고 국정을 수행할 능력이 없음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차분하게 거리로 나와 신문지며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면서 인사를 주고받는다. 난생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은 옛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고 정을 나누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먹을 것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옆 사람과 싸 온 김밥과 빵 등을 함께 나누며 저녁 요기를 끝냈다. 행사는 계속 진행 중이다.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하고 김제동이 나와서 말솜씨를 자랑하는데 얼마나 재미있는지 헌법 1조에서 2조까지는 다 외우게 만든다.
고교생, 대학생들이 왜 나왔는지를 말할 때 우리들의 아이들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서울의 백만 촛불이 타오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내생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뜻을 향해 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도 처음 보았다. 2008년 광우병 수입쇠고기 집회 때도 많이 모였지만 2016년 11월 12일은 역사에 기록될 만한 날이었다. 아니 이미 기록돼 있다. 경찰 추산 26만 명이라고 말했지만 서울지하철에서 승객이 타고 내린 숫자 통계로 보면 126만 명을 넘었다고 언론은 전한다.
서울시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먼저 정보를 알려준다.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모두가 서로를 배려한다. 가장 시급한 게 백만 명의 군중이 움직이는 버스와 전철이었는데 양보하고 줄을 서서 천천히 타는데 서로를 위하는 태도에서 희망을 보았다. 이런 세상이 천국이고 극락일 것 같다. 모인 사람들이 존경스럽게 보였다. 그동안의 염려가 한 순간에 사라졌다. 기분 좋은 집회였다. 풍덩 촛불 바다를 헤엄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였다. 이런 데모와 집회는 처음 보았다. 나중에 끝날 때 노동자와 농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했지만 아무런 사고가 나지 않았다.
박근혜의 권력만 물러나면 터질 사건은 너무나 많다. 역사 이래 엄청난 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이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국민들은 실망과 좌절이 큰 것이다. 백만 촛불의 소망은 오직 하나다. 두 여자의 손에 놀아나지 않는 국가를 원하는 것이다. 살기 좋은 대한민국은 평등한 사회, 공정한 사회를 추구한다. 학생들이 거리로 뛰어 나오지 않고 안심하고 공부하면 미래가 보장되는 사회를 원하는 것이다. ‘이게 나라냐’고 원망과 불평불만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다. 분노한 것이다. 무능한 대통령, 식물 대통령에게 나라를 맡겨서는 안된다고 해서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백만 명인 것이다. 세계 역사에도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촛불의 민심을 겸허히 수용한다던 대통령이 하루 이틀 사이에 변해버렸다. 절대 퇴진하지 않겠다, 검찰조사 받지 않겠다는 것이 현재의 불통 대통령 박근혜인 것이다. 백만 촛불을 들고 일어선 광화문 광장은 그야말로 대통령의 퇴진과 하야하라는 점잖은 충고요, 피를 흘리지 않고 국민의 뜻을 받들라는 것이다.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의 대통령 직접 대면 조사를 거부하고 서면조사해 달라는 오만의 극치는 서울의 광화문 광장 백만 명의 민심을 짓밟아 버렸다. 또 다시 백만의 촛불이 켜진다면 그때는 비극적 종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촛불 바다의 해일로 청와대를 덮어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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