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자 수필가

 

아파트 정원에 고운 빛이 감돈다. 왠지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잎을 보면 마음이 야릇하게도 들뜬다. 어디라도 가서 단풍 속에 흠뻑 젖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와 후배 두 명과 함께 세조길로 향했다.

속리산을 가려면 전에는 구불구불 열 두 굽이 말티재를 넘어야 했는데 이제는 터널도 생기고 편한 길이 만들어져 지름길로 쉽게 갈 수 있어 좋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선정한 ‘국립공원 단풍길 10선’에 들어가는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의 세조길이다. 법주사~세심정 간 우회탐방로인 세조길은 지난 9월 26일 공식 개통된 숲길이다. 이 길은 세종대왕의 둘째아들인 세조가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세심정 부근에 있는 목욕소를 찾아왔던 역사가 깃든 길로 그 의미가 있다.

 

오리숲길에 들어서니 아름드리나무 사이사이에 알록달록한 단풍나무 이파리가 고운 자태로 한껏 뽐내며 손짓을 한다. 그 모습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그야말로 눈앞에 펼쳐진 풍광이 절경을 이룬다. 좁은 길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이 가을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추억 만들기에 한껏 폼을 잡는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알록달록 단풍잎처럼 주변 환경을 돋보이게 해 준다. 법주사 입구부터 세심정까지 목재 데크와 마대 또 폐목을 재활용한 목재블록으로 길바닥을 깔아놓아 편하게 걸을 수 있어 좋았다.

저수지를 끼고 왼쪽으로 난 길을 걷다보면 눈썹바위가 있다. 바위의 모습이 마치 사람의 눈썹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안내문에는 세조가 앉아 생각에 잠겼던 장소로 사람들이 오가며 더위와 비바람을 피했던 곳이라 한다. 잔잔한 저수지에는 많은 물고기 떼가 헤엄치는 모습이 한가로워 보여 나도 여유를 부려본다. 그뿐만 아니라 멀찍이 보이는 건너편 물에 잠긴 오색찬란하게 물든 산 그림자가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보이는 울긋불긋한 고운단풍이 계곡의 물소리와 어우러져 더욱 멋진 조화를 이룬다. 황홀한 마음이 자연의 편안한 품속에 안긴 느낌이다. 세심정에 도착한 우리는 솔 향이 번지는 단풍나무 아래 마련된 식탁에 앉았다.

빈대떡과 막걸리 반 되를 시켰는데 주인장은 시킨 술보다 배나 더 주면서 서비스란다. 이렇게 인심 좋고 멋진 장소에 앉아 단풍잎이 곱게 빛나는 10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을 수놓았다. 좋은 날씨, 좋은 풍경, 좋은 사람들이 어울려 가을햇살과 바람을 가르며 세조길을 느리게 걸어본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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