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찍는 동안 여자 셋이서 남자 스태프들을 설득하느라 투쟁했죠.”
오는 30일 개봉하는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이하 미씽)는 공효진, 엄지원 두 여배우와 이언희 감독, 이렇게 여성 세명이 똘똘 뭉쳐 만들어낸 영화다. 24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공효진은 촬영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투쟁의 과정이었다”고 털어놨다.
‘미씽’은 남편과 이혼한 뒤 혼자 양육을 책임지는 워킹맘 지선(엄지원)과 지선의 아이를 자식처럼 돌보다 갑자기 아이와 사라져버린 보모 한매(공효진)가 주인공이다. 지선이 실종된 한매와 아이를 찾아 5일간 홀로 추적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공효진은 한국말이 서툰 미스터리한 중국인 한매 역할을 맡아 중국어 연기를 선보인다.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 두 남자에게 구애받는 사랑스럽고 푼수 같은 표나리 캐릭터와는 외모부터 완전 딴판이다. 중국의 시골 아가씨 모습으로, 후반부 사연이 밝혀지기 전까지 어둡고 음습하면서도 속내를 알수 없는 표정으로 등장한다.
“감독님과 지원 언니, 저 이렇게 3명은 이 영화가 여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남자 스태프들은 여자가 아닌 엄마 이야기여야 한다고 주장했죠. 이런 미세한 시각차 때문에 여자 셋이 똘똘 뭉쳐 남자 스태프들을 설득하느라 힘들었죠. 한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여성스럽지 않고 누아르 느낌이 나더라고요. 그래도 남자 관객에게 매력적인 영화가 될 수 있겠다 싶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공효진은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2008)를 시작으로 6명의 여성감독과 작업했다. 그래서 남성 위주인 영화계에서 여성감독이 이끄는 촬영현장이 더욱 각박하고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지원 언니는 저더러 페미니스트라고 하는데, 촬영현장에서만 그래요. 연애할 때는 남자한테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현장은 일터이다 보니까 좀 다른 것 같아요. 특히 감독이 여자라서 힘이 약해 보일 때, 화가 나기도 하죠.”
‘미씽’은 여성 영화 기근에 시달리는 국내 영화계에서 보기 드물게 여배우를 투톱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사실 여배우를 위해 멍석을 깔아주는 시나리오는 셋에 하나 정도밖에 안 되죠. 이런 안타까운 현상은 너무 오랫동안 만들어진 분위기인데, 결국 관객의 선택인 것 같아요. 관객 수에 비례해 영화가 만들어지니까요. 우리나라는 여성 관객의 파워가 센 것 같아요.”
공효진은 자신은 그런 면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했다. “저는 남성팬보다 여성팬이 많아서 스크린에 이 정도로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디를 가나 전부 여성팬이죠. 그래서인지 악플러도 별로 없어요. 하하”
공효진은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2014), ‘프로듀사’(2015) 그리고 ‘질투의 화신’까지 TV에서는 연이어 히트했지만, 스크린 성적은 그렇지 못했다. ‘러브픽션’(2011), ‘고령화 가족’ (2013) 등에 출연했지만, 딱히 흥행작이라고 할만한 작품은 꼽기 어렵다.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을 만한 ‘미씽’을 만나기까지 오래 걸린 것 같아요. ‘미씽’은 지원 언니가 안주인 역할을 했지만, 제가 양념을 잘 쳐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영화 편집본을 보고 이의를 제기하고 그랬어요. 그만큼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마치 손으로 깎아 빚은 영화 같아요.”
올해 18년 차 배우인 공효진은 대본을 잘 보지 않는 배우로 유명하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느낀 기분을 유지하고 싶어서라고 말하면 변명일까요? 대본을 잘 안 보는데, NG도 잘 안 내는 ‘메소드 연기’를 하죠. 예전에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 출연할 때 소품으로 준비된 케이크를 몰래 먹다가 감독님께 눈물 쏙 빠지게 혼난 적이 있어요. 그 당시 감독님이 ‘넌 대본도 안 보니? 이건 소품이야’라고 하셨는데, 제가 그때 이렇게 말했죠. ‘예. 저는 제 분량밖에 대본 안 봐요.’ 그렇게 혼났는데도 대본을 잘 보지 않는 습관이 굳어졌네요.”
‘질투의 화신’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조정석이 주연한 영화 ‘형’이 개봉해 반응이 좋다고 하자 재밌는 답변이 돌아왔다.
“조정석 씨는 시사회 때 초대한다고 해놓고 연락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전화해서 ‘조정석 씨 변했네’라고 한소리 했더니 ‘너무 바빠서 그랬다’고 사과하더라고요. 관객들이 낮에는 ‘형’을 보고, 밤에는 ‘미씽’을 봤으면 좋겠어요.”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