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임원 <연변문화예술연구소장>

 

11월 1일은 ‘시의 날’이다. 우리가 사는 중국 동북지역은 이맘때가 되면 벌써 락엽들은 다 떨어지고 또 큰 눈이 내리며 초겨울의 한파가 옷깃을 찌르지만 한국은 갖가지 단풍들이 산곡과 거리를 울긋불긋 물들이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이 풍요로운 한국의 계절 앞을 마주하면 나는 언제나 한국에서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상기하게 된다.

바로 10여 년 전부터 충북에서 일기 시작한 ‘순회명사시랑송회’행사이다.

2001년 중국 연변 문인 5명이 처음으로 충북에서 열린 ‘명사시랑송회’에 참석하는 행운을 지녔다. 그 때를 시작으로 그 뒤 한해도 거르지 않고 2014년까지 꼬박 14년간 충북에서 진행된 ‘순회명사시랑송회’ 행사에 참석을 했다. 한해에 5명, 8명, 10명씩 2014년까지 100여명에 달하는 중국 조선족의 대표적인 문인들과 교사, 공무원들이 충청북도를 방문해 ‘순회명사시랑송회’에 참석했다.

맨 처음 우리가 이 ‘순회명사시랑송회’에 참석해서 놀란 것은 다름 아니라 당시 이원종 충북도지사가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경찰서장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서 시를 랑송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시랑송하는 모습들이 얼마나 진지하고 촉촉한 감동을 뿌려주는지 우리들은 모두가 눈이 휘둥그래지고 아연해졌다.

우리 중국에서는 도저히 볼 수도, 꿈꿀 수도,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당시 우리 중국에서의 시랑송은 시인들이나 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하는 행사가 아닌가. 나도 당시 20여년간 시인으로 중국 동포사회에서 활약 했지만 무대에 올라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우리는 시랑송회가 끝나고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뒤 우리 중국 동포들은 10여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이 행사에 초청되어 갔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갔지만 당시 한국에 다녀왔던 사람들이 혹 만나기라고 하면 ‘한국방문에서 인상이 남는것이 뭐냐?’ 물으면 거의 모두가 한결같이 ‘시랑송 하던 시간이다’ 라거나 ‘시를 랑송 하던 그 떨리는 밤이다’라고 답하곤 한다.

그런데 그런 한국에서의 시랑송이 어쩌면 중국에서, 아니 조선족들이 살고 있는 중국 전역에 퍼져 나갈 줄은 우리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그리고 한국의 ‘순회명사시랑송회’의 무대에 덜덜 떨며 섰던 사람들이 어쩌면 중국에서 시랑송회를 주도하고 이끌고 있는 주역들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중국 길림성 길림지역(500만명 인구)에 조선족들이 30만명이 살고 있는데 올해로 벌써 6회째 가을이 되면 ‘길림지역 명시랑송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이제 이 행사는 길림지역 조선족들의 유명 행사로 자리를 잡고 있다. 또 지난 9월 2일 중국 연길시 연변대에서 개최된 20회 중국 연변‘정지용문학제’ 행사의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다름 아닌 ‘연변시랑송가협회’에서 출연한 시랑송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지난 9월에 산동성 옌타이에서 개최된 중국 전역의 대표적 조선족 여성 300여명이 참석한 여성포럼 대회의 마지막 행사가 시랑송회였는데 시 ‘혼의 노래’를 랑송할 때 수많은 참석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행사를 기획하고 연출한 이들이 어쩌면 한결같이 10여년 전에 한국에 가서 ‘동양일보’와 충북에서 개최한 ‘순회명사시랑송회’의 무대에서 숨죽이고 떨리는 가슴으로 시를 떠듬떠듬 랑송하던 조선족의 문인들인 ‘도라지’문학지의 전임 주필인 김홍란씨, 연길시 텔레비죤 방송국 피디 김영춘씨, ‘연변시랑송가 협회’ 회장 송미자 씨 등등이 아니었던가,

한국의 가을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더욱이 충북은 우리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향수’의 락인으로 찍혀있기도 하다. 은빛마냥 아름다운 금강이라든가, 수려한 청남대, 그리고 충주의 탄금대와 단양 8경 등 선경에 닿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욱 우리에 깊이 뼛속까지 새겨져 있는 것들은 다름 아닌 충북에 일고 있는 시랑송의 밤이고 물결이다.

비록 지금은 아직 중국 전역에서 시랑송회가 극히 미소하게 진행이 되고는 있지만 중국도 이제 10년, 20년이 지나고 나면 한국에서처럼 아름다운 시랑송의 풍경이 천안문 성루에서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앞으로 정말로 이제 멀지 않은 세월이 흐른 뒤면 한국의 ‘명사시랑송회’가 우리 연변에서도 더욱 황황하게 타오르는 시의 노도로 되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자리매김 할 줄로 예감된다.

※ 본문 표기 등은 원고대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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