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선 (시인)

▲ 노창선 (시인)

너무도 갑자기 세상이 바뀌고 있다. 한국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연일 뉴스거리가 된다. 2012년 타임의 표지에서 ‘독재자의 딸(THE STRONGMAN'S DAUGHTER)’라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모델로 올렸을 때만 해도 전 국민이 이토록 치떨리는 분노를 느끼리라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참담하다’를 연발하는 불쾌한 나날이다. ‘참담하다’라는 어휘를 찾아본다. ‘1.끔찍하고 절망적이다. 2.몹시 슬프고 괴롭다. 3.어둠침침하고 쓸쓸하다.’이다. 일상의 언어로는 그다지 쓸 일이 없는 말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런 심정이니 촛불을 켜고 마음을 밝혀 서로 달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여기저기서 혀를 차고 있는데 대통령의 변호인은 또 무슨 말실수를 하여 기름을 붓는 것인가. 그야말로 촛불이 횃불 되는 형국이다. 
  요즘 ‘순실증’이라는 신조어가 등장, 집단우울증에 빠진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기라도 하는 것 같다. 순실증, 올해 국립국어원의 신조어 사전에 등록되어야 할 것이다. 순실증은 국정 농단의 사태로 박탈감, 우울감, 무기력감을 느끼는 증상을 일컫는 말로 분노, 허탈감, 자괴감을 표현하는 일종의 화병이라 한다. 대한민국 사회가 집단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거라는 진단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 국민들은 치유를 위한 처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전국 규모 190만명, 서울광장 150만명이 촛불 시위에 참여했다. 경찰에 연행되거나 부상자도 없이 그 많은 사람들이 질서 있는 평화 시위를 하는 모습에 전 세계인들이 놀라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는 축제 같은 평화로운 광경이지만 무대에 오른 가수들은 비장한 모습이다.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라고 개사하여 노래를 부르는 안치환의 목소리는 매우 격한 피울음의 그것이었다. 상록수를 부르는 양희은도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무대에 섰다. 질서 있고 평화로운 비폭력의 집회 같지만 문화예술인들도 촛불을 들고 교수들은 가족과 함께 ‘대통령을 체포하라’라는 피켓을 들었다. 혁명이다. 촛불의 혁명이다.
  들여다보면 지난번의 촛불집회와는 다른 양상으로 진화한 모습이다. 농민들도 전국에서 트렉터를 몰고 ‘박근혜 퇴진’의 깃발을 나붓기며 상경하는 광경은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은 것이었다. 비록 교통장애 등의 이유로 서울시 진입이 불허되었지만 전국의 농민들이 일주일간 전라도와 경상도를 각각 출발하여 대오를 지어 행군하였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첫눈 내리는 추위 속에서 농민들이 소를 타고 시위현장을 누비는 광경은 국민들의 분노를 새롭게 표현하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급기야 대통령의 체포를 상징하는 ‘수갑찬 박근혜’ 등신대는 설현 등신대의 인기를 능가하였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촛불 시위가 아니라 횃불시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들은 격해지고 있다. 평화스런 모습이 단순한 평화가 아니라 평화 속의 분노라는 것을 읽어내야 한다. 이번 주에 어떤 대책이 나올 것인가.
  퇴진과 탄핵의 길은 분명 다른 과정과 결과를 도출할 것이다. 대한민국 운명의 갈림길이다. ‘차라리 탄핵을 하라’고 청와대는 배수의 진을 쳤다지만 이는 배수진이 아니고 출구찾기의 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염려가 든다. 헌재 재판관들의 정족수 문제에 부딪치면 애매해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대선주자들은 탄핵이나 퇴진의 역풍을 우려해 멈칫대다가 촛불을 든 국민들보다 한발자국 늦게 움직였다. 박근혜 이후 국민들의 상처를 보듬어줄 주자는 누구인가. 개헌 논의도 국민들의 뜻을 모아야 하고 갑작스레 닥친 상황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충분한 인지의 기간이 필요하기도 한 시점이다. 퇴진 후 60일 이내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제약이나, 제왕적 대통령제의 본질을 놓아두고 갈 것인가 등등. 퇴진이냐 탄핵이냐는 차기 대선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복잡한 셈법이 다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사심도 버리고 패거리주의도 버린 리더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200만 300만의 촛불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쓰는데 성공의 키워드가 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추락한 국가의 위상을 빨리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리더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대한민국은 기로에 서 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