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권력보다 무능한 국회가 더 암담하게 다가오는 국정혼란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이 3차 담화문까지 발표하며 질서 있는 퇴진을 약속했지만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비판일색의 정략에 휘둘리는 모습은 여전하다.
분노로 집결했다가 유혈충돌이나 과격한 행동없이 촛불집회 후 곧바로 일상으로 복귀하는 성숙한 시민의식보다 못한 후진적 정치행태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을 총리 하나 추천할 능력이 없는 정치권에 탄핵 이후의 로드맵까지 내 놓으라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청와대와 친박(친박근혜)계는 버티기에 돌입했고 야권은 퇴진 투쟁만 외치고 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탄핵국면이후 단임 대통령제와 후진적 정당정치가 몰고 온 미증유의 위기를 대체할 합의된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국민은 누가 비전을 먼저 제시하고, 정경유착과 대통령의 권력독점이란 한국판 앙시앵 레짐(1789년의 프랑스 혁명 때 타도의 대상이 됐던 정치, 경제, 사회의 구체제)을 대체할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는가에 더 기대가 클지도 모른다.
정치권은 이 정권만 끝장내면 희망이 저절로 오고 모든 게 정상화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대로 권력만 교체된다면 불행은 되풀이 될 것이다. 조지 산타야나는 일찍이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J.M. 뷰캐넌(Buchanan)은 ‘시장의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이 헌법의 실패’라고 했다.
30년 전 폭압적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6월항쟁 때에는 ‘호헌철폐’와 ‘직선제 쟁취’란 구호가 있었다. 이는 현재 가치의 부정과 미래 가치의 제시였다. 구체적인 비전을 실현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불온한 현실을 밀어내는 원동력이 됐다.
이후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정치권은 앞선 세대가 일궈놓은 모범적 성과조차 승계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이후 미래가치가 없으니 새 세상을 만들 책략도 없고 투쟁만이 난무하는 중구난방 정치적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은 대통령의 범죄 혐의와 침묵의 동조자였던 여권뿐만 아니라 야권의 무능과 무책임에도 분노하기 시작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은 근본적으로 한국 정치의 후진성에서 비롯됐다.
집권자가 비선과 당외 조직에 포획돼 5년 임기 내에 뭔가 이뤄내야 한다는 ‘프레지덴셜(대통령책임제) 프로젝트’에 몰입돼 있는 동안 침묵한 정치권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무한 책임의 대통령과 무한 무책임의 국회, 두 선출 권력의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는 방안을 내 놓지 않고선 대한민국을 반복되는 비극에서 구해낼 수 없다.
이제 불행한 대통령과 국민을 낳고 나라를 병들게 하는 헌정구조를 바꿔야 할 때다. 1987년 이래 현행 헌법 체제에서 국민의 기대를 모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초라하게 퇴장했고 국민은 좌절했다.
절대 권력을 부여받은 대통령이 현안을 해결하기보다 문제를 일으키는 꼴이 됐다. 헌법을 이대로 두면 차기 대통령도 역대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광장에 모여 외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국정 운영시스템을 새로 짜는 헌법 개정으로 결실을 맺지 못한다면 광장의 함성은 공허한 메아리로 그칠 것이다. 개정 헌법에 현 대통령의 임기 단축과 과도 내각에 관한 규정도 담는다면 당면한 헌정 혼란을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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