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기선 <시인>

 

한 시대를 살고 간 역사드라마의 거목 초당(艸堂) 신봉승(辛奉承)은 시인, 소설가, 평론가, 시나리오 작가, TV드라마 작가 특히 역사인식의 기획드라마 작가로 평생 혼신을 다해온 창작의 큰 터를 만들고 간 정력의 문학예술인이다.

20대에 시문학, 30대에 극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40대에는 역사에 대한 하늘의 뜻을 깨닫고 50대에 실록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을 쓰는 일에 모든 것을 소진 했다. 60대에는 개인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60대 후반부터 70대에 후반에 이르기까지 1년에 100회 이상의 강연 일정에 바빴고 많은 청중에게 역사를 통한 국가의 정체성과 정신적 근대화를 주로 알리는 것에 자신의 학문을 쏟았다.

신봉승은 강원도 옥제면 현내리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강릉으로 이사해 강릉 사범에 편입하여 고(故) 최인희 시인, 황금찬 선생의 사사를 받으며 시에 몰두해 문학적 기반을 다졌다. 그 후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면서 시나리오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면서 새로운 영화 시나리오의 길을 열어갔다.

그 결과 신봉승은 국방부 현상 모집에 ‘두고온 산하’가 당선되어 그의 새로운 창작의 면모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경희대학교 인문계통의 많은 선배, 문학 동료와 교류하면서 졸업 후 문화공보부 영화과에 근무하면서 한국영화사상 100여편의 시나리오를 탈고하여 영화영상의 톱스타가 되었다. 그 후 텔레비전 시대를 맞이하면서 70여편의 TV드라마와 50여편의 장편역사드라마를 탈고하면서 당시 대단한 인기작가로 전국의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그러면서 대종상, 청룡상, 한국의 영상최고상은 물론 TV를 통한 이름 있는 상을 독차지하여 일약 국민이 선망하는 작가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국역사문학연구소’를 개설하여 역사연구와 함께 역사문학연구에 전력하여 이 많은 역사드라마의 공적을 이룬 인물이 됐으며 역사에 자신의 작가정신을 가일층 추구, 역사 드라마의 정수를 정립하는데 기여하기에 이르렀다. 그 공로가 인정돼 그는 여러 문화예술단체의 장으로 추대됐다. 또 한국예술원 회원으로서 아카데믹한 예술정신을 살려나가 ‘조선왕조 500년’의 48권을 비롯해 100여권이 넘는 저서를 저술하며 정력적인 작가, 공부하는 작가로 그의 창조적 동력을 과시해 나갔다.

서울 인사동 백상빌딩에 있던 한국역사문학연구소에는 많은 문인, 영화인 등이 모여 담론했는데 그 중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김소월 시인이나 이상 시인 등은 40세 이전에 돌아가셨는데 우리들은 80세 넘어 선배 시인보다도 두 배 넘게 살고 있지 않은가. 고맙게 생각해야지’ 하면서 80세 넘은 인생역정에 감사해야 한다고 늘 말버릇처럼 말 해온 신봉승이었다.

생명에 연연하지 않고 영성의 경지로, 생명철학으로 살아온 신봉승! 20여년동안 친구들을 불러모아온 연구소의 문을 닫고 그는 몸이 불편한데도 80세 넘어 경제계, 문학예술계, 삼성, 현대 등 많은 청춘에게 특강을 하기 위해 아픈 폼을 이끌고 나갔다.

쓰러질 때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철통같은 신념이 그를 강하게 진동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때는 강연 도중 쓰러질 것 같았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럴 때 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신의 책무를 다 했다고 후일에 인지시켜 주기도 했다.

나는 그의 분당 집을 찾았다가 부인의 안내로 그와 만날 수 있었다. 서로 1950년 말 명동에서의 작품 습작시절을 상기하면서 옛 추억에 잠시 잠기기도 했다.

나는 일어서서 그와 포옹하고 눈물진 얼굴로 서로 비볐다.

“못말려. 확실히 기선이야”

우리는 또 포옹하고 부인도 눈물을 글썽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환상적인 마지막 만남이었다. 얼마 후 그의 장례식에는 문학계, 영화계, TV계 등 많은 인사들이 조문하고 갔다. 신봉승. 그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등불의 불빛을 비추고 있었다. 얼마 전에 엄창섭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봉승 기념관을 세우려는데 함께 동참해줄 것을 부탁한다는 전갈이었다.

그는 그의 저서 ‘조선의 마음’에서 우리나라는 국민에게 국사를 가르치는데 인색하다고 교육정책을 책했다. 많은 국민에게 역사를 가르침으로써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조선의 구조와 생활, 풍운의 정치적 역사 인식을 바로 알려 우리의 정도를 깨닫게 하는 일이 중요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고향 강릉바다에 수레바퀴를 돌리며 힘차게 떠오르는 햇덩이! 아직도 못 다한 한이 서린 듯 흰 이빨을 갈며 해안으로 몰려오는 소리치는 파도! 강릉에 담은 신봉승의 격정의 혼이 인생유전과 함께 지워지지 않는 세월의 그림자로 남아있다.
<매주 월·수·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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