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걸<충북농협 본부장>

 

“1월에 애들 아빠의 서울 발령으로 신혼 초에 겪었던 주말 부부생활을 다시하게 되었네요. 28년 전과 달리 나이도 있으셔서 걱정을 많이 했답니다. 주말에 청주에 내려오시면 부서원들이 업무처리를 일당백으로 잘 하신다며 어찌나 자랑하시는지 제가 안심하며 편안히 잘 지내고 있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청주에서 정중히 모셔야 되는데 여의치 않아 죄송할 따름입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모시겠습니다. 모처럼의 휴식 겸 연수 즐겁게 보내시고 항상 댁내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청주에서 이응걸 부장님의 아내와 두 딸 올림-

위글은 지난 해 충북 증평에서 인사부 직원들과 춘계체육행사를 할 때 아내가 직접 키운 농산물과 작은 선물을 모든 직원들에게 포장해 선물하면서 함께 써 넣은 글귀다.

우리 세대에는 가족 이야기를 하면 팔불출이라고 불린다. 유치원 동창인 지금의 아내와 연애기간 8년을 포함해서 약 40년을 함께 살아왔다. 그러면서 아내는 ‘참 바보 같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 몇 자 적고자 한다.

아내는 교직원이다. 월급을 받지만 자신을 위해 돈을 쓴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옷도 그렇고 차도 10년이 넘은 차를 아무런 불평 없이 끌고 다닌다. 심지어 그 흔한 김치냉장고를 본인이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5년 동안 내게 사달라고 조를 정도다. 선생님이라 남편에 대한 군기는 확실히 잡으려고 하면서도 집에서 사용하는 집기류 하나 구입할 때는 남편의 동의 없이는 절대 행하질 않는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근무했던 사무소 직원들에게는 명절 때마다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양말 한 켤레라도 선물을 했고, 연말에는 두 딸과 함께 김밥이라도 말아서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행사를 한해도 빠짐없이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강할 땐 무서울 정도로 강하고 냉철하다.

한 번은 필자가 선출직 자리에 있을 때 임기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승진을 위한 방법을 모색한 적이 있었다. 작고하신 부친을 포함해서 주위 가족 모두가 승진을 기대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아내가 강력하게 반대를 했다. “평생 승진을 안 해도 좋으니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면서.

그 당시 결국 아내의 뜻을 존중하여 승진을 포기하고 말았다. 아무리 대의명분이니 직장의 도리니 하지만 그것은 남편의 몫이었기에 아내로서는 외면해도 상관없었던 문제였다. 남편의 다른 동료들의 승진을 보면서도 자신의 남편만은 승진을 반대했던 여자니 누가 봐도 분명 바보임에 틀림없다.

약 3년 전 서울 본부 근무를 희망할까 고민할 때였다. 이때도 아내가 강력하게 권유를 했다. 신혼 초 서울 근무로 5년 정도 주말부부를 한 후로는 떨어져 산 일이 없으니 막막하기도 했으련만 “평생 후회할지 모르니 집안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말했다. 아내의 응원에 힘입어 서울 근무를 하게 되었을 때 막내딸이 장염에 걸려 수일간 입원을 했지만 남편 업무에 지장이 있을지 모른다며 전화 한통 걸지 않았던 사람이다.

함께 사는 두 딸은 농협직원과는 결코 결혼의사가 없다고 한다. 아빠의 영향이 크리라.

그런 남편임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때론 친구처럼 힘들고 어려울 때 조언과 응원을 아끼지 않으며 때론 어머니처럼 안전을 걱정하고 건강을 챙긴다.

이처럼 바보같이 사는 여인이지만 내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사랑스런 연인이다. 다시 태어나면 나를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늘 말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거두어 달라고 졸라 볼 요량이다.
<매주 월·수·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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