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TV 월화극 ‘낭만닥터’ 시청률 20% 넘어서

“‘돈나 언니’는 역시 카세트테이프로 들어야 맛이지”라며 몸을 슬쩍 들썩이는 이 의사. “낭만 빼면 시체지. 또 내가”라며 씩 웃는 이 남자.

속이 텅빈 ‘공갈빵’이 아니다. 실력으로만 말하는 내공 100단의 의사다.

그런데 메이저병원 특진의사로 이름을 날리는 게 아니고, 허름한 산골 병원에서 먹고 자며 환자 치료에만 전념한다.

남들은 그를 이해 못 할 ‘괴짜’라고 하지만, 이런 사람 하나쯤 주변에 있으면 우리의 숨통이 좀 트이지 않을까.

SBS TV 월화극 ‘낭만닥터 김사부’가 방송 8회 만에 시청률 20%를 넘어서며 쭉쭉 뻗어 나가고 있다.

‘제빵왕 김탁구’ ‘가족끼리 왜이래’ ‘구가의 서’ 등을 히트시킨 강은경 작가의 단단한 필력이 대들보가 되고, 타이틀 롤을 맡은 한석규의 꽉 찬 연기력이 화면을 장악한다.

드라마는 낭만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허공에 뜬 판타지보다 더 얄궂은 게 낭만일 수 있다. 하지만 시청자는 그 낭만에 마음을 내줬다.

아직 신드롬까지는 아니다. 요란하게 활활 타오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어렵다는 시청률 20%를 넘어섰으니 연구 대상이다.

이 어수선한 시국에 우리의 가슴에 겁도 없이 낭만을 당긴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 뜨거운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끝까지 태울 수 있을까.

● 한석규, 낭만을 불러내다

아마도 다른 배우가 김사부를 연기했다면 지금처럼 김사부가 낭만적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1990년대를 절정에서 풍미한 한석규가 김사부를 맡았기에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시계의 바늘도 살짝 뒤로 돌려놓고, 그가 이끄는대로 디지털에서 빠져나와 아날로그의 감성에 취할 준비를 했다.

한석규와 함께 ‘서울의 달’과 ‘초록물고기’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를 신나게 소비하며 1990년대를 보낸 이들은 한석규의 감미로운 목소리, 익숙한 연기 화법을 보면서 지금보다는 ‘인간적’이었다고 생각되는 지나간 시간을 추억한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최첨단 의료기기가 발달한 오늘을 무대로 하지만, 김사부는 현재의 속도계와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

그는 몇 대 때려줘야 작동을 하는 ‘석기시대’ 의료기기와 열악한 근무 환경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귀신같은 수술 솜씨를 발휘하며 오로지 의사의 본분에 충실한다. 그런 김사부를 날 때부터 한몸인 양 연기해내는 한석규의 모습은 한석규라는 배우를 몰랐던 젊은층의 시선마저 빼앗는다. 한석규 역시 기교나 CG의 도움 없이 오로지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시청률 20%를 끌어모은 것이다.

실용성만을 따지고, 먹고 살기 위해 앞만 보고 뛰며, 오로지 위로위로 올라가기 위해 바쁜 우리에게 이기적이 아니라, 이타적으로 사는 게 얼마나 폼나는지 한석규의 김사부는 이야기한다.

성공만 바라보는 젊은 강동주(유연석 분)가 그런 김사부에게 “잘난척 한다”고 하자 김사부는 이렇게 맞받아친다. “그것을 전문용어로 ‘개멋부린다’ 그러지. 좀 더 고급진 말로는 낭만이라고 그러고. 낭만 빼면 시체지. 또 내가.”

● 올드팝이 최면을 걸다

한석규가 지핀 낭만의 불씨는 올드팝을 만나 기세좋게 파다닥 타오른다. 시청자는 귀를 파고드는 친숙하면서도 감미로운 올드팝의 향연에 최면에 걸린 듯 드라마 속으로 빠져들어 가버린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전개 속도는 빠르다. 우물쭈물하지 않고 직진한다. 환경이 열악한 시골 병원일 뿐이지, 그 속에서 일하는 김사부의 손놀림은 전광석화, 정밀 보석공예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왠지 모르게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고, 시청자에게 이완의 시간을 주는 것은 저 유명한 올드팝의 공이 크다.

드라마의 주제곡인 빌리 조엘의 ‘더 스트레인저’(1977)를 비롯해, 마돈나의 ‘머티어리얼 걸’(1984), 비틀스의 ‘헤이 주드’(1968)가 적재적소에서 울려 퍼지면 시청자의 마음은 속수무책 노글노글해진다.

이들 올드팝은 낭만과 동의어인 추억을 소환하며 드라마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다.

시대극도 아니고 ‘응답하라’ 시리즈도 아니지만, 올드팝을 타고 흘러나오는 슈퍼스타들의 짱짱했던 젊은 시절의 목소리는 곧바로 우리를 무장해제 시킨다.

30년 전 마돈나의 ‘깡깡’했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났다는 시청평이 나올 정도.

올드팝은 각박하고 치열하고, 숨돌릴 틈 없는 지금과 달리, 그래도 그때는 우리 모두가 좀 더 인간적이었고 여유가 있었으며, 기본을 지키며 살았다는 달콤한 착각(?)에 휩싸이게 한다.

그러한 착각이 동력이 돼, 누구나의 가슴 속에 숨어있기는 하지만 평소에는 꺼내보기 힘들었던 낭만 바이러스가 조금씩 안방극장에서 퍼져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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