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조아라 기자)동양일보가 창사 25주년을 맞아 ‘동아시아의 공통 가치를 찾아서’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동양포럼은 이번 회에서 한국과 중국 지식인의 글을 소개한다. 김태만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와 위완잉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원은 각각 ‘새로운 한·중 관계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현재의 한·중 관계를 점검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편집자>

■ 김태만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 김태만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한중, 지정학·지경학·지문학적 최인근 국가… 의존시너지 커

청년 인적교류 증가… 미래 교류협력 이어갈 중요한 자원 기대

1. 오래된 미래, 중국

올해로 한·중간 수교가 된지도 어언 24년이 지났다. 수교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은 개혁개방의 세례가 아직은 충만하지 못했고, 여전히 사회주의 계획경제 상태에 처한 무채색의 공간이었다. 아직은 혁명의 여진이 큰 에너지를 갖고 있으나 자본주의적 욕망도 동시에 분출하는 과도기적 사회였다. 아울러 사회주의적 질서에 억압된 다소 무질서하고 혼돈스런 공간이었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카오스(혼돈) 속의 코스모스(질서)를 애써 이해하려 노력하는 듯했다. 바야흐로 등소평이 주창한 ‘사회주의 초급단계’가 ‘사회주의 시장단계’로 이행되기 직전의 혼돈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1990년대 벽두부터 불기 시작한 동유럽 공산권의 해체는 중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사회의 개혁개방과 자본화가 가속되었다. 인민들은 자본의 맛에 길들여져 갔고, 등소평의 ‘선부론(先富論)’은 금과옥조의 교시가 되었다. 필자는 1990년대 초중반의 유학 기간 동안에도 중국경제의 고도압축성장 사례를 목도할 수 있었다. 베이징(北京)대학 서문 밖에서 과일을 팔던 한 개체호(個體號)의 이야기이다. 길거리 좌판에서 리어카로, 두 건물 사이의 틈새를 개조한 가게를 임대하다가 다시 그 건물의 정식 가게를 인수하는 전 과정을 불과 3 년 만에 진행했다. 작가 위화(余華)의 동명 영화 ‘인생(人生)’에서 주인공은 “용돈이 생기면 병아리를 사서 키워 닭이 되면 팔아 염소를 사고, 염소를 키워 팔아 송아지를 사고, 송아지를 키워 팔아 나중에는 비행기까지 산다.”는 꿈을 꾼다. 그렇게 꿈을 꾸는 중국식 자본주의는 세계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속히 압축성장해 갔다. 중국사회주의 경제성장 과정을 고속 촬영한 영상을 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90년대 말, 한번은 모교를 찾아갔다가 길을 잃었다. 내가 알던 길들은 모조리 사라지고 편도 8차선의 길들이 모교를 에워싸고 있었다. 즐겨 찾던 식당이나 서점도 큰 도로로 갈라지고 에워싸여 찾을 길이 묘연했던 기억이 있다. 중국인들조차 한동안 병원에 입원이라도 했다가 귀가하려면, 집을 찾지 못해 헤매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이처럼 급속한 경제성장 속도에 중국인들조차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라 한다.

 

2. 중국의 힘

중국에서 공부한 중국학자들 대부분은 중국을 긍정적 눈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많다. 평생토록 중국을 연구해 온 사람들이 중국을 부정하면서 중국 공부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중국문학 속에 나타난 중국인, 중국사상, 중국인의 사유는 이방인들을 주눅 들게 할 정도로 광대하고 다양하다. 한 국가나 민족 또는 국민들의 위대함은 그 민족이 창조한 문학과 예술 속에 오롯이 스며있기 마련이다. 필자 또한 중국의 문화예술은 물론 중국인의 사유와 정신적 우수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과학기술의 수준도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중국의 다종다양한 우수성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폄훼하거나 부정하기 일쑤다.

지난 30여 년간의 경제성장 폭은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사례임에 틀림없다. 또는 G2로서 미국에 맞짱뜰 정도로 성장한 중국의 국제사회에서의 발언이나 국방력에 주목하는 이도 있다. 한·중·일 무대에서도 중국의 역할이나 위상에 대해 우려하면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눈에 보이는 현실적 파워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13억4000만의 인구, 4조 달러라는 외환보유고, 3조8700억 달러로 무역 교역량 세계 1위, 희토류나 석유 등 부존자원 1위 등 중국을 설명하는 수식어는 너무도 많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있어서 중국은 지정학적 개념을 넘어 지경학적, 심지어 지문학적 차원에서도 우리와의 상호 의존도가 극대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무지와 불신이 팽배해 있는 대중국 관계가 과연 우리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한국인이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있다. 중국의 힘의 원천이 중국공산당이라는 사실이다. 공산당이라고 하면 ‘얼굴 빨간 괴물’이라는 인식이 투영되어 중국공산당도 그렇게 치부하는 것은 우리의 치명적 유치함이다. 중국공산당원은 입당에서부터 철저한 인사관리와 평가 그리고 자기관리로 성장해 간다. “인민을 위한 봉사(爲人民服務)”라는 구호처럼, 철저한 당성과 인민성이 없이는 성장할 수 없는 조직이다. 당 관료 부패 사건은 소수의 이야기일 뿐이다. 거의 대부분은 성실하고 진실한 당원으로 구성되어 있어 결코 흔들리지 않을 조직이다. 이들 당원 중 초특급 엘리트들이 최고 지도자로 성장해 간다. 그 정점에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존재한다. 우리 정치 현실처럼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어느 날 하루아침에 지도자나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를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나라가 중국이다.

여기서 정책의 지속성과 일관성이 나오고 정치권력의 신뢰성이 탄생한다. 치열하게 토론하되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충직하게 준수하는 조직이 바로 중국공산당이다. 그래야 미래예측이 가능해진다. 중국공산당이야말로 진정으로 국가와 인민의 미래를 예측해 발전 전략을 도출하기에 매우 유리한 제도를 지닌 조직이다. 우리는 중국의 장점을 모르거나 잘 알려하지 않는다. 그래서는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중국은 힘 있는 국가이다.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있다.

 

3. 중국몽(中國夢)과 일대일로(一帶一路)

2015년 3월 5일, 12계(屆) 전국인민대표대회 3차 회의 석상에서 발표된 리커창(李克强) 국무원총리의 ‘정부공작보고’는 ‘12.5’를 마감하고 ‘13.5’를 여는 해인만큼 새로운 아젠다에 대한 강력한 의지표명이 드러난다. 즉, ‘실크로드 경제벨트 및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공동 건설 계획(建設絲綢之路經濟帶和21世紀海上絲綢之路)’,

이른바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에 대한 강조가 그것이었다.

사실, 시진핑(習近平) 체제 출범 이후 특히 시진핑이나 리커창의 해외 순방 길에 불쑥불쑥 산발적으로 주장되거나 선언되곤 했다. 그러나 구체적 함의와 내용 및 추진 전략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모호했었다. 그러던 ‘일대일로’가 바야흐로 2015년 양회 종료 선언 직후 공식 선포되었다. 중국의 경우 통상적으로 중대 국가 정책이나 아젠다가 거의 대부분 국무원 명의로 발표되는 상례에 비춰 ‘일대일로’ 발표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를 필두로 외교부와 상무부가 발의하고 국무원이 승인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이 아젠다의 최종 목표가 경제 발전전략의 일환임을 명확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일대일로’ 구상의 추형(雛形)은 여러 차례 발표된 바 있었다. ‘실크로드 경제벨트 및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구축’이라는 제안 형태로 제시되면서 국제사회의 관심과 주목을 이끌어낸 바 있었다. 즉, ‘일대일로’는 “주변 국가 경제번영과 지역경제협력을 유리하게 하고, 서로 다른 문명 교류를 강화해 세계 평화를 이끌고 세계 각국 인민을 행복하게 하는 위대한 사업”이고, 따라서 인류 사회 공동의 이익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협의 노력해 ‘일대일로’ 연장선에 있는 모든 국가와 지역이 공동 발전하고자 하는 전략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수천 년 동안 계승되어 온 실크로드 정신을 “평화협력, 개방포용, 상호학습, 상호이익”으로 개괄한다. 나아가 이것이야말로 실크로드 주변 국가들의 번영과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결과 인류문명 발전을 촉진했다고 여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동서양 소통과 협력의 상징인 만큼 실크로드 정신은 전 세계가 공유하는 역사적·문화적 유산이라 주장한다. 이른바 윈윈(win-win) 협력으로 평화로운 공동 번영을 추구함으로써 21세기에 보다 주효한 철학사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복잡다단한 국제적·지역적 문제의 솔루션으로 제기된 것이 바로 실크로드 정신이라고 한다. 이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긴 하지만 이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새로운 사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 여겨진다.

시진핑은 취임 전후시기에 중국인의 숙원인 ‘개인과 국가 발전의 상징적 총화’를 ‘중국몽’으로 표상하고 지속적으로 ‘중국몽’의 실현을 추동해 오고 있다. ‘중국몽’을 시진핑 시대를 상징하는 전략지향이라고 한다면, ‘일대일로’는 ‘중국몽’을 구체적으로 외화시킬 수 있는 실현방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강조되지는 않았지만, 일대일로의 동쪽 끝이 한반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일대일로 전략이 중국 내부 문제 해결을 위한 솔루션으로 폄하될 소지도 있는 아젠다이긴 하다. 그러나 어쩌면 중국적 공동발전 전략이라는 점을 우리가 신뢰하지 않으면 상대 역시 신뢰성 있는 태도로 다가 오지 못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을 이해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더 큰 신뢰와 지지를 보낼 때 진정으로 윈윈할 수 있는 한·중 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한국의 미래일 수 있을까· 나아가 우리와 한반도 그리고 동북아 전체의 미래일 수 있을까? 많은 의문을 쉽사리 떨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지경학적 지문학적 최인근 국가이자, 남북 불안정을 해소할 유일한 외세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바야흐로 ‘중국몽’이라는 아젠다를 앞세워 일대일로라는 초국가적 메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금 우리가 중국의 메가 이벤트를 수렴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거인의 어깨를 잘 활용하는 것이 소의 등에 올라탔던 쥐의 지혜와 같은 것이 아닐까!

바야흐로 한·중 인적 교류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청년 학생 교류만 보더라도 중국으로 유학한 한국인이 7만 명, 한국으로 유학 온 중국인이 6만 명에 달한다. 이들이야말로 미래 한중 교류의 핵심자원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언어를 바탕으로 문화와 사회 그리고 경제와 산업을 상호 이해한 미래 인재들이 각자 자국으로 돌아가 서로 지한파·지중파가 되어 갈 것이다. 이들이 한·중간 교류협력의 진정한 다리가 되어 추동해 나간다면 지금 같은 불통(不通)의 오류는 제거될 수 있을 거라 믿어 마지않는다. 청년들이 서로 배려하고 격려하며 함께 끌고 나가는 한중교류의 미래상이 가슴 벅차게 느껴진다. 루쉰(魯迅)이 ‘광인일기(狂人日記)’에서 외쳤던 “아이를 구하라(救救孩子)”가 아직도 절실한 까닭이다.

 

■ 위완잉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원)

▲ 위완잉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원)

중국, 한국 무역 흑자 주요 원천… 국민간 상호교류도 확대돼

양자관계 내실 다지고 소통·협상 통해 어려움 극복해 나가야

1. 역사의 공유

한국 성균관대에서 7년 동안 공부하면서 중국학자와 교류하는 기회가 많았다. 특히 중국학자가 성균관대를 방문하게 되면 꼭 성균관 명륜당을 소개해 줬다. 중국학자들은 명륜당의 건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 역사를 듣고 모두 역사와 전통, 특히 학문과 교육을 중요시하는 한국인에게 감탄함에 인색하지 않았다. 한번은 어느 중국학자와 명륜당 앞을 지나가면서 한국 천원 지폐에 그려진 명륜당을 가리켰다. 그분은 놀라운 표정을 지으면서 지폐에 있는 건물과 한자 명륜당(明倫堂) 세 글자가 쓰인 현판이 달린 건물을 여러 번 비교하면서 다시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이 지폐에 그려진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에 조선시대의 가장 유명한 학자라고 답하였다. 그분은 학자의 초상을 지폐에 그리는 것은 이 국가에서 교육을 아주 중요시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고 감탄했다. 사실 그분 뿐만 아니라 기타 명륜당을 참관했던 중국학자들도 성균관 명륜당이 경복궁, 창덕궁 못지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특히 중국에서도 실전된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을 모시고 제사하는 의례를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여 지금도 매년 춘계·추계 두 번의 석전대제를 하고 있다는 데 놀라워했다. 내가 알고 있는 중국학자 중 특별히 석전대제를 구경하러 오는 분도 있었다. 한·중 양국은 이처럼 오랫동안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면서 살아왔다. 618년 전 성균관 설립 당시도 지금도 한·중 양국은 같은 역사를 공유하면서도 깊은 정신적 세계에서도 통하고 있다. 성균관 명륜당이 바로 역사와 현재, 그리고 중국과 한국을 연결해 주는 하나의 문처럼 이 문을 여는 순간 상대방의 마음도 같이 열리게 되었다. 이것은 양국 간 상호이해에 도움이 되는 역사·문화적 기초이자 양국 간 중요한 자산이기도 하며 한·중 양국 간에 무수히 많은 이러한 자산들이 우리들의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2. 교역 및 교류의 확대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으로서 최대의 수출대상국이자 수입대상국이며 한국 무역 흑자의 주요 원천이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미국과 일본을 합한 것보다 많아 한국 전체 수출의 26%를 차지했다. 중국의 경우 세계 무역이 지속적인 위축 상황에서 2016년 1월부터 8월까지 산둥성의 수출·입은 신속한 증가세를 유지했고 특히 수출 성장률은 중국 연해지대의 성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일대일로’ 국가와 한·중 FTA발효에 따른 한국에 대한 수출·입 규모 확대가 그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한·중 FTA발효 이후 한·중 무역 규모 축소로 인해 한·중 FTA의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한·중 FTA가 없었으면 올해 한·중 양자 무역 규모는 더 많이 축소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중 FTA는 지금까지 중국에서 교역액이 가장 크고, 관련 분야와 범위가 가장 전면적인 양자간 FTA로서 세계 무역이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한·중 무역과 한·중 경제에게 새로운 동력을 주입하고 있다. 비록 사드배치 결정에 대한 제재수단으로 중국이 비관 무관세장벽을 통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을 대규모 제한하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지만 실제로 지방차원에서의 한·중 FTA 경제협력은 아직까지 대부분 계획대로 추진 중이거나 큰 파급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은 또한 올해 10월 1일부터 7일까지, 즉 중국 국경절 기간 한국 방문 관광객을 통해 진일보로 알 수 있다. 7월 초 한국에서 사드배치 결정을 밝히자 역사상 가장 좋은 관계에 오른 한·중관계는 순식간에 냉각해졌다. 주로 양국 정부와 군, 학계에서만 논의되었던 사드가 하룻밤 사이에 범국민적 화제로 등장되었다. 그러나 사드를 둘러싼 한·중 양국 간의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약 25만명의 중국 관광객이 한국을 여행지로 선택했다. 각 백화점, 면세점 중국인 대상 매출은 전년대비 20~40%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 방문 중국 관광객보다 무려 3배로 늘어났으며 전체 외국 관광객의 거의 반을 차지했다. 올해 국경절 기간 서울 명동에서 여행하러 온 중국 친구를 만날 때 도대체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의심할 정도로 익숙한 중국어만 들렸다. 이것을 순수한 관광이나 간단한 경제적 현상으로 설명하기보다 양국 간·국민 간의 교류의 확대라는 시각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중 수교 이후 양국 관계에서 특히 경제적 협력이 신속한 발전을 이루어지면서 ‘정냉경열(政冷經熱)’라는 평가도 나타났다. 양국 관계의 신속한 격상에 따라 주로 국가가 주도한 정치·외교·경제부문에서의 교류에서부터 지금은 민간으로 확대되어 현재 양국 민간은 양국 간 상호 교류의 중요한 주체로 등장했다. 중국의 명절과 연휴에 몰려드는 중국 관광객과 그들의 구매력은 한국 상가들이 거절하기 어려운 환영대상이 되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전에 따라 늘 언론과 네티즌들의 글에 유도되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한국 여행을 통해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한국음식을 직접 먹고 한국인을 직접 접하고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사회·문화 교류를 하게 되고 가장 원시적인 방식으로 한국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양국 국민은 이제 양국 간 교류의 주체이자 양국 문화의 전파자로서 양국 간 민간의 접촉과 교류가 많아질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으며 이것은 또한 양국 간 오해와 불신의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3. 한·중관계의 현실과 미래

2015년 9월, 그리고 2016년 9월 중국은 각각 항일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와 항저우 G20을 개최해 두 차례의 개최국 외교를 통해 활발한 양자, 다자외교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두 차례의 행사에서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은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2015년 9월 기념행사 직전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여부와 관련하여 국내외의 큰 관심을 모은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국·내외 여론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기념행사에 참석해 중국의 최고 국빈 예우를 받았으며 한·중관계도 역사상 가장 좋은 시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올해 박근혜 대통령이 항저우 G20 참석으로 다시 중국을 방문하기 2개월 전 한국에서 주한미군 사드배치를 공식적으로 발표, 한·중 양국 간의 긴장감이 고조되었고 불과 1년 만에 한·중관계에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1992년 수교 이후로 한중관계는 줄곧 양자관계 발전에서의 모범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사실 2008년 양국관계가 전략적 협력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한 이후로 양국 간 비록 한·중 FTA의 체결과 발효, 한국이 중국이 주도한 AIIB에 가입, 한·중 인문교류 공동위원회 설립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꺼운 성과가 이루어졌지만, 중국이 기타 국가 특히 주변국가와 다양한 수준의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거나 격상시키는 동안 한·중 관계는 적어도 공식문건 상으로 전략적 협력적 동반자관계에만 머물러 있었다. 이와 관련해 한·중관계의 ‘이미지와 실체’를 구분해야 하고 양국관계에서의 ‘근거 없는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평가들이 나타나고 있다.

시진핑 정부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그 동안의 한·중 관계를 기초로 양국 관계 역시 흡족할 만한 발전이 있었지만, 한국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 발표 이후 양국관계는 취약한 부분을 제대로 노출시켰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빈번해지고 동북아의 불안정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요청해 왔다. 그러나 중국은 지도자, 대변인, 공식 문건 등을 통해 기존 한반도 3원칙 즉 ‘한반도의 안정, 한반도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거듭 강조해 왔다. 유엔 안보리 2270호 결의에 대한 중국의 찬성, 그리고 가장 엄격한 대북제재도 실제로 실시하고 있으며, 이것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결심과 성의를 보여줬다. 다만 한반도의 안정은 남·북한 인민, 나아가서 동북아의 평화에도 중요한 영향이 미칠 수 있는 만큼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이라는 것이 중국의 판단이다. 이것은 또한 한반도 정책에 있어서의 중국의 출발점이자 레드 라인이기도 한 상황에서 한반도 정책에서의 중국의 전향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동북아 정세가 불안정해지고 한·중 양자관계도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추세가 보이는 시점에 한·중 관계는 격상이 아니라 어떻게 공고히 하고 지속해나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것은 양국 간 위기나 쟁점이 발생할 때 그것이 양국관계 전체에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다.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도 바람에 강한 것처럼 한·중관계도 기반이 튼튼해져야 어느 한 분야에서 일어나는 비상사태, 분쟁, 갈등 또는 제3국의 영향 등 요인으로 인한 충격에 쉽게 큰 파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정적이고 지속적이며 건강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한·중 관계는 아래와 같은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 첫째, 기존의 한·중관계의 성과를 기초로 하여 양자관계를 내실화해야 한다. 이것은 한·중 간 기존의 각 영역에서의 다양한 양자, 다자협력과 교류를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다. 둘째, 현재 한·중 관계 발전에 있어서의 부족한 점과 취약한 부분을 발견하여 그것을 인정하며 소통과 협상을 통해 최대한 양국의 이익에 모두 부합하는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한·중 관계는 발전하면서도 공동의 도전을 직면하고 있다. 도전이 나타난 것은 꼭 나쁜 일은 아니다. 이러한 도전에 더욱 더 의지하고 배려해야 한다. 중국에서 흔히 쓰이는 “진짜 금은 불 달구기를 두려워하지 않다”라는 말처럼 공동으로 도전에 대응하고 시련을 이겨내면 양국 간 상호 신뢰도 한층 더 강화되고 양국관계도 한층 더 긴밀해질 것이다.

 

◇ 매월 첫째·셋째 주 ‘일본에 전래된 한국문화’를 연재하는 저자(이충호 후쿠오카 국제대 부이사장)의 개인 사정에 의해 둘째 주 나갈 예정이었던 동양포럼을 한 주 앞당겨 게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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