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시인)

▲ 이석우(시인)

어수선한 나라의 하늘이 얼어가고 있는 겨울 문턱에서 반가운 소식을 접한다. 청년극장이 ‘아나키스트 단재’를 12월 8일 무대에 올린다하니 답답한 가슴을 단재의 울림으로 씻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앞선다. 그것도 무료공연이다.
우남 이승만이 임시정부의 국무총리직에 임명되면서 미국에 ‘청원서’를 보내자 단재는 즉시 독립운동은 무장투쟁으로 이어져야한다며 의정원을 탈퇴한다. 이는 독립운동을 외교적 노력을 중심으로 끌고 가려는 이승만의 외교노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국면이다. 이 연극은 이 시점을 단재가 민족주의와 무정부주의 사이를 갈등하는 단초로 디자인하고 있다.  정형화된 ‘독립운동가 단재’ 의 내면에 침잠해 있는 인간의 체취를 찾아내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국제위폐사건’을 주 스토리선으로 끌고 가면서 독립투사들이 당한 비인간적이 고문과 박자혜여사와 두 아들의 면회 장면을 통해 캐릭터의 감정선이 오버랩될 때 관객들은 마음 졸이며 박수할 것이다. 기존의 연극 형식에서 벗어나 음악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시도도 잊지 않고 있다. 마지막 장면의 단재 결혼식은 어떻게 진행될지도 궁금하다.
청년극장 관계자는 이제는 '잘 살기'보다 '제대로 살기' 위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며 단재를 주문한다.
단재는 동방 아나키스트 연맹에 참여하면서 철저한 비타협적 투쟁과 민중 중심의 혁명을 주장한다. 즉 독립에 있어서는 테러와 폭력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는 폭력적 행동은 열렬했지만 ‘민중적 역량의 기초’ 가 없었다하였고 반대로 3.1 운동의 경우 “민중적 일치의 의기가 보였지만 폭력적 중심” 을 갖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단재의 독립운동 사상은 폭력을 통한 민중혁명이었다. 이승만의 비폭력적 외교적 전략과는 괘를 달리한다할 수 있다. 말년에 단재는 분명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그런 일면이 있었을 뿐이다. 이 연극이 단재의 삶의 궤적을 민족주의자에서 무정부주의자로 온전하게 옮겨 놓은 것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금년은 단재 선생 순국 80 주년이 되는 해이다. 골목마다 나라를 걱정하는 정치가는 넘친다. 그러나 골목 가득 넘치는 나라 걱정은 가시질 않는다. 저들이 진정 나라 걱정이 아니라 제 걱정만 하는 탓일 게다. 단재 선생의 「하늘북 노래」를 들어보자.  박정규님은 시의 제목에서 송(頌)을 빼고 간결하게「하늘북」으로 해석하였다. 그로하여 시의 상징성은 더 높게 할 수 있었으나 원제는 「하늘북 노래」가 맞다. 이 노래를 듣다보면 나라 걱정이 걷힐 게 분명하다.
“나는 아네 하늘북 치는 사람을 / 그는 슬퍼하기도 성내기도 하네 / 슬픈소리 서럽고 노한 소리 장엄하여 / 이천만 동포를 불러일으키나니 / 의연히 나라 위해 죽음을 결심케하고 / 조상을 빛내고 강토를 되찾게 하나니 / 섬 오랑캐의 피를 싸그리 긁어 모아 / 우리 하늘북에 그 피를 칠하리라” 단재 신채호 선생의 시 전문이다.정말 모골(毛骨)이 송연(松烟)해지는 노래다. 단재는 2천만 동포가 하늘북을 치고 있다고 선언한다. 그들의 슬픈 북소리는 더욱 서럽고 노한 소리는 더욱 장엄해지는 것이다. 끝내 북소리는 나라를 위해 죽음 까지 결심하게 한다. 정말이지. 우리의 털과 뼈를 소나무 연기가 되어 사라지게 만드는 시다. 이광수는 독립을 의심했으니 단재는 독립을 확신하였다. 1924년 신채호 선생이 일본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대련 감옥에서 들어가게 되자 박자혜 여사는 감옥에 간 남편을 대신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한다. 눈이 내리면 하늘에 귀 기울이며 천고송을 읊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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