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대…각자 직분에 충실하게 임할 때다

(동양일보 지영수 기자) 국회는 헌정 질서 훼손의 책임을 물어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 소추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안 의결은 주권자인 국민의 심판으로,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심판은 끝났지만 이제 헌법재판소의 사법적 심판이 남아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국민의 불신을 받아 국회로부터 탄핵을 당한 것은 불행한 일이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를 인용한다면 박 대통령은 헌법이 부여한 5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첫 대통령이 된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우리 스스로 그만두게 하는 또 하나의 아픈 역사를 기록하게 된다.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합동참보본부를 방문, 이순진 합참의장과 대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를 맡은 이후 첫 현장 일정인 이날 방문에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앞줄 오른쪽 첫번째)과, 청와대에서 외교·안보 분야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두 번째 줄 세번째)도 수행했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재적 의원 300명 가운데 299명이 투표에 참여 가운데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찬성 234명, 반대 56명, 기권 2명, 무효 7명으로 가결 처리했다. 찬성률은 78%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은 2004년 3월 12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대한민국 68년 헌정사에서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거나 유고 상황이 발생한 것은 4.19 혁명, 5.16 군사쿠데타, 12.12 사태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 이어 이번이 다섯 번째다.

탄핵안 가결 후 정국수습은 기본적으로 헌법과 법률을 따르는 것이 순리다. 그것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대통령을 탄핵해서 지키려 한 법치주의에 부합하는 길이다. 정치권은 더 이상 촛불에 편승하지 말고 광장의 목소리를 제도권 정치에 담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민심의 요구에 한 발짝 뒤처지더라도 협상과 타협을 통해 정치적 해법을 찾는 게 책임 있는 정치의 모습이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됐다. 헌정사상 9번째 권한대행 체제다. 황 총리는 권한대행으로서 내치뿐만 아니라 외교·안보까지 총괄하게 된다. 내각은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고 안정적 국정관리를 위해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대통령이 통치능력을 상실한 데다 대외적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 정상화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국내적으로는 정치적 불안과 함께 투자와 소비 위축 등으로 내년 경제 전망이 암울하다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이 터진 뒤 공직사회가 크게 동요하고 국정 동력도 상실됐다. 외교·안보, 경제, 사회 등 모든 측면에서 극복하기 만만치 않은 도전이 다가오고 있다.

무엇보다 안보에 한 치의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혼란한 틈을 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예측할 수 없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한국군의 참수작전에 대응해 청와대를 타격하는 전투훈련을 참관했다고 11일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이 인민군 제525군부대(총참모부 작전국) 직속 특수작전대대 전투원들의 전투훈련을 참관했다면서 "전투원들은 훈련을 통하여 연평도의 불바다를 기어이 청와대의 불바다로 이어놓고 남조선 괴뢰들을 멸망의 구렁텅이에 영원히 처박아 넣을 영웅적 조선인민군의 원수 격멸의 투지와 용맹을 남김없이 과시하였다"고 전했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총리가 대행하는 비상시기에 군과 안보 당국은 조금의 허점도 보이지 말아야 한다.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합동참보본부를 방문해 보고를받고 있다. .

탄핵 이후 정책의 경기 대응력이 떨어지면서 지금의 내수 불황이 고착화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11일 발표한 '탄핵 이후, 정책의 경기대응력 약화로 불황 고착 우려' 보고서에 따르면 4분기 경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던 정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제 심리를 급랭시켜 실물경제를 침체시키고 있다.

현 경기 상황을 나타내 주는 동행지수 순환 변동치는 8월을 정점으로 2개월 연속 전월 대비 하락하는 모습이다.

기업의 경제 심리도 4분기 들어 빠르게 냉각되는 모습을 보여 실물투자의 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호조가 이어지고 있는 건설투자도 민간 부문을 중심으로 전반적인 수주 활동이 크게 둔화하는 모습이다.

고용에서는 10월 실업률이 3.4%로 전년 동월 대비 0.3% 뛰고, 제조업 취업자 수는 지난 7월 이후 감소세로 전환돼 전체 고용창출력을 훼손하고 있다. 생산도 제조업이 지난 9월(-1.9%)과 10월(-1.6%) 두 달 연속 감소했고, 서비스업은 증가율이 두 달 연속 둔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혼돈의 시대를 맞고 있다. 대통령의 직무는 중지됐지만, 국정이 중단돼선 안 된다. 정치권은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이 날 때까지 정국을 안정시키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데 지혜를 모으고 합심해야 할 때다.

공직자들의 역할과 책임은 더욱 무거워졌다. 공직자들이 중심을 잡고, 긴장감을 갖고 업무에 임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도 엄정한 복무 기강을 확립할 때다.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 민심도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 각자 직분에 충실하며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해소하는데 촛불 동력을 쏟아야 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