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우<충북도교육감>

 

교육감 취임 후 얼마쯤 지났을까, 한 여직원이 결재를 왔다가 쭈뼛거리며 물어왔다.

“죄송한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혹시 예전에 현관에서 굴비테러 하셨던 분, 맞으세요?”

굴비테러. 그 말에 나는 급소를 찔린 듯, 컥, 숨이 막혔다가 이내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벌써 4반세기 전, 나는 전교조결성 건으로 해직된 채 학교 밖에서 교원노조 합법화운동을 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는 현직교사들이 내주는 후원금으로 활동비 정도를 충당하고 있었는데, 명절때는 굴비 같은 선물용 물품을 떼다 파는 재정사업으로 어려움을 덜기도 했다.

그해 추석에도 우리는 굴비사업을 벌였다.

그래서 추석 전날, 주문받은 학교들에 배달을 나서려는데, 급한 전갈들이 왔다.

학교들마다 갑자기, 주문한 대로 돈은 낼 테니 배달은 말아 달라는 거였다. 무슨, 이런 황당한 일이?

알고 보니, 전교조물품을 사 주는 교사들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도교육청 지시가 내려왔다는 게 아닌가. 분노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주섬주섬 굴비두름을 챙겨 “배달할 데가 있다”며 사무실을 나섰다.

나중에 들으니, 그때 내 두 눈에 불줄기가 흘러내리더란다.

그렇게 눈이 뒤집혀 도교육청으로 갔다. 가자마자 현관에 굴비를 늘어놓고 퍼질러 앉아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전교조굴비 뒷조사시킨 놈, 당장 나와라!”

현관이 쩌렁쩌렁 하자 직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벌떡 일어나 “×××들아! 네놈들이 사람이냐…”하며 굴비두름을 휘두르고, 사방으로 투척하며 ‘굴비테러’를 ‘자행’했다.

주변이 금세 굴비칠갑, 굴비 투성이가 되었다.

그렇게 한바탕 회오리가 지나가자, 모(某) 국장이 나와서 사무실로 가자더니 사과와 위로를 했다.

그런데, 사실 그 일화는 겉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테러요, 나는 여지없는 테러리스트다.

전교조 교사들의 ‘과격’이미지들도 거의 그렇다. 상황과 맥락을 생략한 채 전해지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광화문 촛불행진을 보다보면, 그 시절 청와대로 돌진하다 연행돼 난지도(쓰레기장)나 벽제(화장장)에 버려지거나 유치장에 갇히던 일들이 떠오른다.

그때 우리는 교사들의 양심을 짓밟고 능욕하는 권력에 격렬하게 저항했었다.

우리를 그런 데다 싣고 가 팽개치면 시동 걸린 차 앞에 드러눕거나 차 밑으로 기어들기도 했다. 연행 후 신분을 확인하려고 강제로 지문을 채취하려 들면 엄지손가락을 물어뜯으면서 항거했다. 그 장본인이 바로, 단양의 순둥이 시인 (고)정영상 선생이었다.

달군 인두로 등지짐을 당하는 사육신의 비명을 ‘과격한 비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파렴치한 권력의 행패에 맞선 의분에 ‘과격’딱지를 붙이는 것도 다르지 않다.

그 치열했던 신화들에 비하면 내 경우는 희미한 일화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의분의 추억’이나마 있어 지금도 불의 앞에 꼿꼿할 수 있으매, 겸연쩍지만 돌아보기 부끄럽지는 않다.
<매주 월·수·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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