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하 수필가

 

억울하다.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억울하며 억울한 만큼 남자의 존재가 무섭다. 예쁘게 조성되어진 공원에서 운동을 하다가도 남자가 성큼성큼 맞은편에서 걸어오거나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나면 머리가 쭈뼛해 진다. 공원에서 내가 첫 번째로 마주치는 사람은 아닌지 공중 화장실에 혼자 있지는 않은지 살펴지는 요즈음 새로 생긴 증상이다. 그 뿐인가. 엘리베이터를 먼저 탔는데 검은 모자를 쓴 덩치 큰 남자가 타려고 하는 순간에 두려움이 엄습하였다. 싸한 공기에 밀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그 짧은 시간에 서둘러 내리고 말았다. 층계로 터벅터벅 올라오며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들면서 마주친 남자 분께는 참으로 죄송하였다.

화장실 살해사건이 있기 전 가해자의 근황을 살펴보니 얼마든지 그 전에 가해자의 정신 병력을 방치하지 않았다면 화장실 살해 사건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본다. 그나마 그와 마주치지 않은 여자들은 CCTV를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살아있음을 다행으로 생각 하였을 것이다.

본인을 무시한 것도 아니고 무시하는 것 같아서 살해를 했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무참하게 파괴한 범죄임에는 틀림없다. 더구나 살인을 목적으로 ‘여자’가 표적이 되었다는 점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생각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하여 적이 될 수는 없는데 가해자는 결국 자기와 다른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살인이라는 무서운 행동을 서슴없이 행하였다. 그 아픔은 살해를 당한 여성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안타까움 이었다. 이유 없이 희생된 넋을 기리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당한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애도하는 쪽지 글들을 남겼다. 어느 여성은 ‘여자들을 향한 칼부림 이라고 생각하니 여자로서 이미 같이 당한 느낌’이라는 말을 쪽지에 남기기도 하였다.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되는 이 공포감은 언제쯤에나 해소가 될지 염려스럽다.

위험수위의 정신 병력이 있거나 성폭력의 출감자들의 재범으로 인하여 희생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 여자라는 이유로 피해를 본다는 것은 기본권이 박탈되는 느낌이다. 환자들을 위한 계속적인 추적 치료와 복지 상담 등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은 물론이요, 병원의 진료와 수사계는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상호관계를 유지하며 환자가 완치될 때까지 지속적인 관리와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이와 같은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살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드는 사건이다. 여자 혼자서도 마음 놓고 산책할 수 있고 또 여자이기 때문에 행복하며 안전과 생존권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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