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진 <광복회 충북지부장>

 

10월 26일 오후 1시.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러시아 국적의 sv5437기가 두시간이 지나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여행의 목적은 러시아지역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으로 광복회원 20명과 동행했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1921년 한국 독립군이 활동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 아버님(김창도·1898~1967)이 1920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 참가하신 후 1921년 지청천·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에 참가, 러시아의 이만(달네레첸스크)을 지나 자유시 참변까지 겪으셨던 곳이다.

그때로부터 95년이 지난 오늘 아버님이 활동하셨던 현장을 답사한다는 것은 가슴이 설레고 눈물이 앞을 가리는 일이었다.

알렉세호스크와 마사노프에서 공산군과 민족파간의 패권다툼으로 인해 벌어졌던 자유시참변.

아버님이 속해 있던 민족파 부대의 패전으로 많은 군인들이 희생당했다.

이 곳에서 아버님은 특무장교로 지청천 장군 휘하에 있다가 참변 중 소련 공산당 군인에게 체포됐다. 이후 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탈출해 만주지역에서 1945년까지 조국의 광복을 위해 26년간 계셨던 지역이다.

탐방 이틀째가 되는 날 우수리스크로 가서 우리 고장 진천 출신의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가 있는 수이픈 강변에서 선생님을 추모하는 행사를 가졌다.

유언대로 시신은 화장돼 수이픈 강에 뿌려졌고 그 강물이 동해로 흘러 고향에 닿아 영혼이라도 진천에 도달해 계신지 모르겠다.

“보재 이상설 선생님. 고향사람이 선생님이 계신 곳을 찾아와 묵념을 드립니다.”

또한 진천 출신의 소설가이며 시인인 조명희 선생.

1894년에 태어나시고 1938년에 하바로프스크에서 사망하신 조명희 선생은 일본인의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총살을 당하셨다.

고향을 떠나 멀리 러시아 땅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두 분의 영전에 명복을 빌며 탐방을 이어갔다.

하바로프스크에서 혁명내전영웅 기념탑을 참관했는데 22만여명의 전사자의 이름이 명각 돼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탑과 꺼지지 않는 불꽃을 보면서 우리도 나라를 위해 투쟁하시다가 돌아가신 독립유공자님들의 공훈을 잊지 않는 기념비를 한곳에 세워 오래도록 기렸으면 하는 소망을 안고 다시 시내 여러 곳의 사적지를 탐방했다.

아버님은 러시아에서 다시 만주로 오셔서 활동하시면서 안도현 명월구에서 결혼, 1937년에 나를 낳으셨는데 광복후 1947년에 월남하셨다.

나는 같은 해 9살인 여동생을 데리고 만주에서 두만강을 건너고 북한 땅을 지나 서울까지 5개월을 걸려 아버님과 재회할 수 있었다.

아버님은 한국에서 군인으로 복무하시면서 6.25전란을 겪으신 뒤 1956년에 예편하셨다.

1967년에 세상을 떠나시고 지금은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계시지만 나는 항상 아버님의 일편단심 국가를 위해 헌신하셨던 일들을 잊지 못하고 있다.

<매주 월·수·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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