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자 수필가

 

금과 같은 상징의 백비가 있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겼다. 그 비는 우리나라에 4-5개의 백비(白碑)중에서 유일하게 주인이 있는 비라고 한다. 궁금한 생각이 들어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에 있다는 백비를 찾아갔다.

백 마디의 말보다 글씨 한자 없는 백비 앞에 섰다. 당당하고 위엄 있게 서 있는 백비의 모습을 보니 왠지 전신이 위축되고 죄책감마저 드는 느낌이다. 받침돌위에는 자연적으로 돌 표면이 사선무늬를 그려놓은 듯 한 석비다. 세상사의 잘못을 주시하듯 늠름한 모습으로 안정된 자세로 서 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신비롭고 오묘하여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 어떤 사람들은 구구절절 주인공의 행적을 찾아 수많은 말로 비문을 새긴다. 그런데 이 비는 아무런 글씨 한자 없는 보기 드문 비다.

그 비의 주인은 아곡 박수량(朴守良 1491~1554)선생으로 조선 중종· 인종· 명종 때의 문신이다. 그는 25세에 문과에 급제한 뒤 64세까지 39년간을 두루 관직에 있으면서 오직 공직자로서의 사명에 충실했던 목민관이었다. 중종 9년(1514)에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쳤고 명종 원년(1546)에 청백리에 올랐다.

청백리란 청귀(淸貴)한 관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품행이 단정하고 순결하며 깨끗한 정신과 자기 일신은 물론 가내까지도 청백하여 오천(汚賤)에 조종되지 않는 관리를 말한다. 비의 주인이 이렇게 훌륭한 인격과 덕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문을 적어놓지 않아 더욱 유명하다.

유교문화에서 깨끗한 공직자를 말할 때 죽은 사람에게는 ‘청백리’라 부르고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염근리’또는 ‘염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조선시대 청백리의 표상인 박수량은 황희 맹사성과 함께 당대 최고의 청백리 3인에 속한다.

이곳의 백비는 선비정신의 표본으로 고위공직자의 연수과정 중 현장학습코스라 한다. 요즈음 고위공직자를 비롯해 부를 창출할 목적을 갖고 있는 이들이 부정부패로 이 사회가 멍들어 있다. 욕심 때문에 생긴 엄청난 비리로 썩을 대로 푹 썩어 그 고약한 냄새가 지독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백비가 의미하는 심오한 뜻을 좋은 표본으로 삼아 깨끗하고 명랑한 공직사회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이 어수선하게 얼룩진 세태에 부정부패를 척결할 결단력 있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할 때다. 정의를 외칠 수 있는 사회, 이치에 맞게 사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 보통사람이 편하게 사는 사회,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고 맑은 사회가 되기를 소원해 본다.

청백리 박수량님은 사랑하는 마음하나 가슴에 품고 물 흐르듯 구름 가듯 덕을 쌓으며 욕심 없이 생활하신 분이다. 오로지 청렴결백한 품성을 지닌 숭고한 정신이 존경스러워 그곳을 떠나온 후에도 오래도록 가슴이 떨린다. 그 떨림은 무에서 유를 찾아 낸 기쁨이기도하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