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애(동양일보 신인문학상)

한 폭의 수묵화가 펼쳐진다. 시간이 응축된 결 사이로 먹빛 농담들이 그윽하게 번져 있다. 백년의 세월 속에 잠시 머물렀던 시간들이 망설이듯 멈춰 섰다간 일필휘지 굽이쳐 흘렀다. 마을회관을 지으려고 빈 집을 허물면서 베어진 감나무였다. 차탁으로 귀히 쓰인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찾아간 자리였다. 반으로 자른 단면을 손으로 쓰다듬으니 아릿한 기억들이 묻어나온다.

감이 주렁주렁 달린 시골마을이 열두 폭 병풍처럼 펼쳐진다.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이면 담장을 넘어온 가지마다 홍시가 탐스럽게 익었다. 초가집 일색인 마을에서 단 하나 뿐인 기와집이 할머니의 집이다.

고샅길 막다른 곳에 이르면 솟을대문이 어린 나를 압도했다. 거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증조할아버지가 아래채에 기거했고 본채의 큰 방이 할머니 방이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문고리가 달린 방문이 열리며 긴 곰방대를 문 할머니의 무표정한 얼굴이 담배연기와 함께 앉아 있었다. 무거운 침묵에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살가운 큰어머니가 부엌에서 뛰어 나와 반겨주었다. 그럴 땐 아래채와 본채 사이로 등이 굽은 작은아버지가 설핏 그림자처럼 지나가곤 했다.

아름드리 감나무 속에 검은 무늬가 들어간 것을 먹감나무라고 한다. 먹감나무는 탄닌 성분이 많아서 오래 묵은 심재일수록 무늬가 더 검다. 감을 딸 때 가지를 함께 꺾게 되면 이 때 생긴 상처를 타고 빗물이 나무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스며든 빗물이 나뭇결을 따라 추상적인 무늬를 만들어 낸다. 나무 안에 먹물을 들인 것 같은 자국은 상처가 크고 깊을수록 더 아름다워진다고 한다. 스스로의 고통을 치유하며 자연이 만들어낸 담채화이다. 그런 먹감나무는 기품이 있고 아름다워 조각이나 가구 등에 많이 쓰인다고 한다.

작은아버지는 선천적 척추장애다. 늘 땅만 보고 걸어 다녔다. 철없는 동네 아이들이 곱사등이 흉내를 내고 다니면 할머니는 아궁이속에 지피던 솔가지 연기로 눈물을 감추었다. 제 때 호적에도 못 올려 소학교 들어갈 나이가 되고 나서야 몰래 출생신고를 했었다. 증조할아버지는 곱사등이 손자를 부정하고 싶었겠지만 할머니에게는 평생 품어야할 가슴 아픈 상처였다. 손이 귀한 종가였다. 아들 셋을 낳고도 집안에 병신자식을 두어 가문에 흠집을 남겼다는 이유로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마음을 닫아버렸다. 어쩌다 손자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도포자락 제키며 돌아앉아 눈길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커다란 바위를 안고 살얼음판을 걷는 시집살이였다. 가슴에 응어리가 맺혀있던 할머니는 세월이 흐르면서 장수하신 당신의 시아버지와는 등을 돌리며 살았다. 아래채에서 기침소리가 나면 본채에서 방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아들을 업고 할머니는 용하다는 곳이면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침술과 한약방을 찾아다녔다. 발품을 판 보람은 없었지만 덕분에 작은아버지는 냄새만으로도 약초를 구분했다. 침과 뜸을 뜨는 것을 몸으로 익혔고 나중에는 한약을 조제해서 직접 달여 먹었다.

그 당시 시골에 약이라고는 빨간 옥도정기와 종기에 바르는 고약 따위가 전부였다. 마을에서 급체라도 나면 환자 가족들이 찾아와 작은아버지를 업고 갔다. 때로는 이웃마을에서 침을 맞으러 오기도 하였다. 집안에 침쟁이를 두었다는 역정이 잦아지면서 용하다는 소문도 담을 넘어 퍼져나갔다. 싸늘한 도포자락에 서릿발이 날려도 할머니는 집으로 찾아오는 환자들을 애써 막지 않았다.

재주가 많고 돈이 있어도 꼽추에게 시집 올 처녀가 없었다. 가끔씩 혼담이 오갔지만 병신이라는 결점 탓에 번번이 깨어졌다. 낙담한 할머니의 가슴속에 멍만 깊어져 갔다. 하는 수 없이 꼽추라는 것을 속이고 먼 곳에서 처녀를 사오다시피 데려와 혼사를 치렀다. 놀란 숙모가 도망이라도 갈까봐 할머니는 매일 밤 문밖에서 잔기침을 하면서 밤을 새웠다. 친정집에 논 세마지기를 안겨주고 시집온 숙모는 행랑채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다. 해마다 시아버지 눈을 피해 찢어지게 가난했던 사돈집으로 소달구지에 쌀가마니를 실어 보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없는 날이면 장애를 안고 홀로 남겨질 아들이었다. 못마땅한 혼사로 망신스럽다는 집안의 냉대가 먹감나무에 빗물이 스며들 듯 가슴에 젖어들어도 묵묵히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는 그 이듬해 한약방을 차려서 작은아버지 내외를 분가시켰다. 장애가 죄인이 아니건만 땅만 보고 살던 아들을 새처럼 훨훨 세상 밖으로 날려 보내준 것이다. 뒷마당에 자라던 오래된 감나무 한 그루를 베어 거기에 ‘감나무한약방’이라는 글씨를 새겼다. 살림나던 날, 큰절 올리는 작은아버지 등을 만지며 할머니는 생전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작은아버지는 먹감나무의 상처 속에 스며든 당신의 소중한 수묵화였다. 눈물과 회한과 아픔과 고통이 어우러진 세상에 하나 뿐인 그림이었다.

검은 멍 자국이 무늬가 되기는 어렵다. 나무는 고통을 제 안으로 온전히 껴안은 후에라야 비로소 한 폭의 수묵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시아버지의 냉대와 동네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멸시가 힘들어 비루한 목숨을 아들과 함께 놓아 버리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할머니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힘으로 한 많은 운명을 극복했다. 오늘날 작은아버지의 성취는 오롯이 할머니의 지극정성 때문이었다.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조개는 제 살 속을 파고든 모래를 감싸 안아 오랜 시간 고통을 감내한 뒤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낸다. 장애아들은 할머니의 살 속에 파고든 모래알이었다. 고통을 참으며 자신 안의 상처를 조개처럼 감싸 않았다. 인 고의 시간을 견디며 작은아버지를 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으로 세상에 내어놓은 것이었다. 상처를 승화시켜 만든 할머니만의 진주였다.

상처받고 힘들었던 날들 속으로 스며든 빗물은 내 삶에 어떤 무늬를 그려 놓았을까?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빗물이 새어 들지라도 참고 견뎌낸다면 언젠가 나만의 무늬가 새겨지리라. 상처가 깊을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먹감나무처럼.

길게 가로누운 나무 위에 오후의 햇살이 따사롭다. 검은 무늬 사이로 그 옛날 할머니 집으로 가던 고샅길이 떠오르고 감나무 잎 사이로 바람소리가 들린다. 정갈하게 가르마를 쪽진 할머니가 곰방대를 물고 미소 짓는다. 햇살아래 펼쳐진 수묵화가 일순 환해진다.

 

 

 

 

■ 수필 당선소감 / 신 정 애

 

한 알의 대추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고파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언젠가 광화문 사거리에 서서 대추 한 알에 대하여 하염없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내 안엔 왜 태풍이며 천둥, 벼락이 없을까. 나는 왜 붉어지지 않을까. 붉어지려고 노력이나 했을까.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제대로 익어가야겠다고 다짐한 것이.

글쓰기를 시작한 지 수년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격랑들이 내 안을 지나갔지만, 모르겠다.

그 파문들이 나를 조금씩 익어가게 했는지. 나는 아직도 제대로 붉어지지 않았는데 이제 한 알의 대추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려 한다.

미흡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동양일보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수필이라는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단단한 기초를 놓아주신 동리목월의 박양근, 곽홍렬 교수님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를 뽑아 올려 오롯이 한 채의 집을 짓게 해준 김영식 선생님의 지도에 감사드립니다.

지난한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시거리문학회, 동리목월 문우들, 그리고 묵묵히 곁에서 지켜봐준 남편과 먼 타국에서 늦깎이 엄마를 응원해준 아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 1955년 포항출생

● 한동대 영문과 졸업

●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 동리목월문예창조대학 연구반

● 시거리문학 회원

● 2017년 신라문학 대상 수상

 

 

-수필 부문 심사평

 

가족의 소중함 살려내는 글 솜씨 빼어나

 

이번 응모 편 수가 지난해보다 18편이나 늘었고, 전국에서 뿐 아니라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도 응모하는 등 홍보도 잘 되고 작품 수준도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

건축 등 전문직종에 오래 근무했던 분이며 귀촌한 분, 식물에 조예가 있는 분, 전통 문화 등 다방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들이 많아지며 수필의 영역이 넓혀지고 풍성한 소재가 재미를 더하여 심사하며 읽는 즐거움이 늘어난다.

‘홍시’(강전섭)는 당선작으로서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작품이어서 금세 눈길을 끌었다. 간결한 내용과 문체가 올바르고 너무 현학적이지도 않고 아무 군더더기 없이 잘 마무리 짓고, 홍시를 매개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효성심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더구나 우리 지역에서 만난 모처럼만의 좋은 작품이어서 반가웠다.

그런데 ‘먹감나무’(신정애) 작품이 나타나며 두 작품을 서로 비교하고는 우열을 가늠하게 되었다. 오래 묵은 먹감나무를 베어낸 나뭇결을 보며, 척추장애인인 작은아버지의 삶이 장애로 멋진 무늬를 품게된 나무로 비유하며 스토리텔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능란한 문장력에 호감이 간다. 자식이 한약방을 차리며 자립하도록 치성을 기울인 할머니의 눈물겨운 사랑, 가족애에 대한 뜨거운 헌사다. “큰절 올리는 작은 아버지 등을 어루만지며 할머니는 생전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작은아버지는 먹감나무의 상처 속에 스며든 당신의 소중한 수묵화였다. 눈물과 회한과 아픔과 고통이 어우러진 세상에 하나 뿐인 그림이었다.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조개는 제 살 속을 파고든 모래를 감싸 안아 오랜 시간 고통을 감내한 뒤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낸다. 할머닌 모래를 품은 조개였다.”

함께 보낸 ‘풀매’도 잊혀가는 우리 민속품을 사랑하며 가족의 소중함도 살려내는 좋은 글이어서 글 쓰는 솜씨가 빼어남을 확인시켜 주었기로 신정애 님의 글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잠망’, ‘풋굿’(김옥한)은 누에그물, 호미씻이로서 사라져가는 우리의 농촌문화의 유산을 잘 그리고 애착심을 갖게 한다. 아버지의 추억이 깃든 잠망과 마을 농촌 사람들이 어울리는 신명 나는 한마당 잔치를 경험했던 이들에겐 영원한 그리움이요, 현재도 고향 사랑으로 남아 있게 한다.

‘11월과 낙엽’(김광석)은 가을에 느끼는 사색적인 사고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고 다시금 공감을 자아내지만 다소 산만하였다. 문단을 묶어서 읽기 편하게 했으면 싶다.

시각장애인이 쓴 헌신적이던 선생님에 대한 추모글도 특이한 감성을 자극한다. ‘그리운 정윤민 선생님’(김성은)은 삼풍백화점의 붕괴로 동생 둘과 함께 매몰된 스승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잘 표현했다.

죽음에 대한 보상금이 장학금이 되어 이를 지원받아 대학에 다닐 수 있었고 지금은 맹학교 중견 교사가 된 사연이 심금을 울린다. 직설적이고 다듬지 않은 언어로 썼지만 그것이 더 감동적이다.

비록 설익은 글일지라도 자주 쓰는 자세가 중요하다.

■ 심사위원 : 조성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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