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논설위원/신성대 교수)

▲ 신기원(논설위원/신성대 교수)

예전부터 내려오는 속설 중에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있다. 직접적으로는 돈 버는 것을 포함해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나중에 결과만 좋으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대단히 성과중심적인 시각이다, 이런 표현은 공공조직보다는 민간조직에서 합리화되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지역의 한 토론회장에서 유명기업체의 임원이 ‘자치단체의 행정이 너무 소극적이고 구태의연하다’면서 자기는 직원들에게 ‘위법이 아니라면 다 시도하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상당히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업무추진방식이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법을 위반하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해를 끼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이나 시행령 또는 시행규칙이라는 것이 모든 피해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이런 상황에서 법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법을 위반하는 것도 아닌 중간지대는 의외로 범위가 넓을 수 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라는 말을 때때로 졸부들과 연계하여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다. 개처럼 번다는데 치중해서 생각할 때 그렇다. 하지만 졸부들은 개처럼 돈은 벌지언정 정승처럼 돈을 쓰지는 않는다. 돈을 정승처럼 쓰려면 인격도 갖추고 품위 있게 사회적 의미를 찾아서 돈을 써야 하는데 현실세계에서 그런 졸부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대개 돈을 지키고 늘리는데 관심이 있거나 어떻게 하면 자식들에게 세금을 안내고 물려줄 수 있을까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또 누가 내 돈을 빼앗아가지 않을까를 염려하지 이웃이나 사회를 위해 보람 있게 돈을 사용하는 데는 인색하다.
 재벌들도 마찬가지이다. 국정조사 청문회장에서 참고인으로 나왔던 인사의 표현처럼 한국의 재벌들은 오직 자기재산의 세습과 각자의 지분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조폭과 같아서 상대방에 대하여 치명적인 보복을 은밀하게 가함으로써 감히 자신들에게 덤비지 못하게 하는 무뢰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국정조사 청문회장에서 보여준 재벌들의 행태 역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였다. 부모에게 몇 십억을 상속받아 일부를 세금으로 납부한 이후 몇 조원의 재산을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형성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금은 성실하게 납부했는지 모든 것이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부당하게 보이는 것을 답변내용에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대통령과 독대를 한 이후 보여준 행동들을 통해서 정상적이기 보다는 뭔가 떳떳치 못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살면서 유독 돈에 대해 집착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불안하고 개인적으로는 각자 삶에 있어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돈을 가지고 자기를 웅변하고 만족감을 얻으려고 한다. 대체로 우리는 돈이 없으면 독립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기가 어렵고 마음이 허전해 주체적으로 행동하기 어렵기 때문에 돈을 모은다. 또한 돈이 없으면 남이 나를 무시할 것 같고 돈이 많으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돈’ ‘돈’하며 ‘돈 자랑’을 한다. 특히 불법적이고 부정한 방법을 통해서 돈을 벌어도 처벌을 받지 않는 풍토는 사회를 온통 물질만능주의로 몰고 갔다. 물론 돈은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고 인생을 자유스럽게 해준다. 하지만 휴머니즘이 담겨있지 않은 돈은 공허할 뿐이다.
 우리가 살면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기는 어렵다. 살다보면 어느 순간 아니 어느 장소에서 흠이 생기기 마련이다. 돈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땀 흘려서 돈을 벌고 여기에 인간미를 담아서 쓸 수 있다면 그는 이미 부자라고 할 수 있다. 또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정승도 될 수 있다. 자기를 위해서만 쓰는 사람은 결코 정승처럼 쓰는 사람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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