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용 <괴산증평교육지원청 교육장>

 

“자네가 제대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음성고등학교에서 요청이 있으니, 7월 1일부터는 음성고등학교 정구부 지도를 위해 우선 그 곳에서 근무를 시작해 봐.”

1978년 6월 30일, 육군 중위로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 신고를 위해 찾은 옛 충청북도교육위원회 현관에서 당시 유성종 장학관님과의 만남으로 음성고 정구부 아이들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아이들과 숙식을 함께하는 일상의 시작은 새벽 성채산 오르기 훈련이었고, 틈새 시간에는 학생들의 학력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에 ‘일일 한자’와 ‘생활 영어’를 하루도 빼 놓지 않고 챙겼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러나 많은 훈련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경기력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한계를 느낄 때 즈음, 나는 선수생활의 경험은 많았지만 지도자로는 경험이 부족함을 실감했다.

기량은 갖췄으나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2년 가까이 1회전도 통과 못하는 팀의 지도교사였던 것이다. 많은 전지훈련을 통한 경기 경험 축적과 선배 지도자들의 조언으로 팀은 서서히 변모했다.

1980년 10월, 전라북도 ‘전주 61회 전국체육대회’에서는 1회전과 8강전을 가볍게 통과했고, 준결승 경기에서는 그 해에 전국대회 3관왕이었던 서울 용산고와의 치열한 접전 끝에 3:2로 제압하여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는 인천고와 세트를 주고받으며 3시간 동안의 팽팽한 경기를 펼쳤다. 마지막 대결에 나선 우리 팀의 선수는 팀의 막내로 전날 밤에 내 옆에서 잠이 들었던 진성화 학생(현재 경기도 모 고등학교 교사)이다.

이 녀석 또한 내 삶을 채워준 의미 있는 인연 중의 한 사람이다. 성화는 당시 음성고 2학년이었으며 상대는 인천고 3학년생으로 대부분 음성고등학교를 열세로 예상했다. 파이팅을 외치며 경기장으로 향하는 진성화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몹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경기장으로 향하는 본인도 이제 3학년 선배들은 모두가 경기를 마쳤으니, 금메달의 운명은 2학년인 자신에게 달렸다는 중압감에 그 심정이야 오죽했으랴…….

그러나 진성화 학생의 파이팅과 투혼은 놀라웠다. 상대편에게 1점을 빼앗기면 악착같이 1점을 따라 잡았고, 2점을 빼앗기면 2점을 따라가고 우리가 1점을 도망가면 1점을 따라 잡히는 반복되는 양상이었다.

팽팽하던 승부의 추는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상대가 체력에서 밀리면서 서서히 우리에게 기울고 있었다. 결국, 진성화 학생은 게임 스코어 5:4로 승리하면서 우리는 최종 세트스코어 3:2로 승리했다. 울부짖음에 가까운 함성을 지르며 내 품으로 달려오는 그 녀석의 모습은 지금도 또렷한 역전의 파노라마로 남아 있다.

달려와서 나에게 쓰러지며 하는 말 또한 잊히지 않는다.

“선생님! 이제 결혼하실 거죠?”

그 이후에 왜 그런 말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어느 날 “선생님은 왜 결혼을 안 하세요?”라고 내게 질문했더니, 내가 무심코 “너희가 전국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대학가는 모습을 보고서 결혼하겠다.”라고 했단다. 그렇다면 내 결혼을 성사시킨 고마운 제자가 아니었던가?

올해 10월에도 ‘충청북도 정구협회 회장’ 자격으로 ‘충청남도 97회 전국체육대회’에 참가하였다.

공교롭게도 충청북도 정구선수단이 종합우승을 하게 되었고 그 기쁨을 안고 청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현재 우승 선수들이 아닌, 내 젊은 시절 함께 했던 그 녀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매년 10월이 오면, 교사의 출발지에서 기쁨과 자신감을 듬뿍 안겨주었던, 그 시절 함께 한 제자들이 더 보고 싶어진다.

음성고는 97회 전국체육대회에서도 남고부 복식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음성고는 변함없이 전국적으로 정구 팀의 명문학교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것은 과거에 훌륭한 선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음성고 동문들의 단단한 결속력과 무궁한 발전을 기원해 본다.

36년 전, 61회 전국체육대회 남자고등부 정구경기에서 우승하고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활짝 웃던 그 사진 속 주인공 10명은 현재, 5명은 교사, 2명은 공무원, 3명은 사업을 하면서 열심히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오늘은 더욱 그리워진다. 병신년 연말, 그 들과 한자리에서 회포를 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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