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마젤란 해협을 지난 비글(Beagle)호의 선장 프링글(Pringle Stokes)은 거의 보름에 가까운 날을 자기의 선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의 불안은 그의 이상한 행동으로 촉발된 선원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결국 비글호는 선장의 자살이라는 불명예를 자신의 첫 항해의 주요 사건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찰스 다윈의 아버지 로버트(Robert)가 이 사실을 알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비글호의 두 번째 항해가 자신의 아들에게 기회를 주었을 때 그가 했던 반대는 도자기 사업으로 탄탄한 부를 쌓은 웻지우드(Wedgwood)가문이 자기의 처가(妻家)라는 사실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손아래 처남 조사이어(Josiah)가 재정적 뒷받침을 약속하자 그는 찰스를 내어주기로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현대는 근대의 이성을 주춧돌로 삼고 감정의 존재를 백안시하는 논리우선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그 성벽을 쌓음으로 그 모습을 갖추었다. 우리는 현재 우리가 따질 수 있는 만큼의 이성적 논리와 느낄 수 있는 만큼의 감성적 비논리가 합해진 장(場)의 어느 즈음에 각자의 존재의 좌표를 설정한 채 삶을 마주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동시대의 특징이다. 우리의 후손들에 의해 ‘과거’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해야 할 운명을 가진 현대는 바로 현재의 모습만큼의 정당성과 부족함을 가지고 있다.
  비글호의 항해를 마친 다윈은 1859년 ‘자연선택에 의한 종(種)의 기원에 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라는 긴 제목의 책을 출간한다. 사람들에 의해 ‘종의 기원’이라고 간단히 불리는 이 책은 그의 ‘진화론’에 대한 세간의 이해에 도움을 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막심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다윈이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해 왔다고 주장했다는 생각은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진화론은 다윈의 주장이 아니다.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이 오히려 그 존재가치를 무용지물로 만든 라마르크(Jean Baptiste Lamarck)의 생물변이설 (Transformism)에 가까운 그 무엇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가설이나 추론이 아니라 과학으로 입증된 ‘이론’이다. 지금도 생태계가 바뀌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물이 사라지고 그 환경에 맞는 새로운 생물의 종(種)이 출현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이 때 환경이 조금씩 변하면 그에 맞게 새로 출현한 생물의 모습이 그 이전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왜 그 이전의 생물 자신이 모습을 바꾸어가며 진화 한다는 주장으로 사람들에 의해 변질되었을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추상적이든 물질적이든, 단순한 개념이든 구체화된 사실이든, 그것 자체로 존재가치를 갖는다. 그것을 그 존재자체로 연구하는 것이 공부다. 그 공부를 통해서 사람은 이성과 감성을 구체화 한다. 사람은 그 논리와 느낌의 크기만큼 세상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있게 된다. 그리고 역사는 그 의견의 크기로 한 사람의 존재를 형태화 한다.
   다윈은 진화가 어떤 생물체 자신이 환경에 맞추어 몸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선택하는’ 것임을 제목에서조차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실이 ‘만일 그의 주장이 옳다면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 쯤 되는 존재가 어디엔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출현을 막을 수는 없다. 그 사람들이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어보았는지 아닌지도 따질 필요가 없다.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분명히 존재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교육이 인간의 모든 추상적, 구체적 존재가치를 결정하는 유일한 수단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주의적 측면에서 보면 다윈의 책을 읽어본 적도 없고 종(species=種)이라는 말의 정의도 모르면서 진화론을 모르는 주변의 누군가가 말해 준 의견을 다윈이 말한 적도 없는 내용으로 해석한 후에 다윈을 정의하는 사람들의 존재가치가 다윈보다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인생의 본질을 향해 걸어야할 의무가 자신에게 부과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사람은 존재의 가치에 관한 ‘인식’을 할 수 있다. 스스로 어떤 일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고 해서 객관적으로 인정될 의식이 주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오차를 최소화시키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지금부터 185년 전인 1831년 12월 27일 영국 서남부 데본셔(Devonshire)의 플리머쓰(Plymouth) 항구에서 출항을 기다리는 비글호 갑판에 선 다윈은 학문의 개념을 좀 더 본질화할 역사적 자리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