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소설가)

▲ 박희팔(논설위원/소설가)

 불통이 또 불통을 부린다면서 동네가 시끄럽다. 꼭 돌아오는 일요일이라야 된다는 것이다. “자네가 마음을 고치게. 자네도 알다시피 이번 일요일엔 동네혼사가 있잖은가?” “왜 나한테만 그랴. 그 쪽보구 양보하라구 햐.” “이 사람 참 말이 되는 소릴 해야제. 혼사날짜를 어떻게 물리는가. 자네 칠순잔치를 땡기든가 해야지 안 그려?” “그려 이 사람아, 혼인날짜는 벌써 한 달두 전에 양가에서 결정한 것이구 이미 청첩장도 스무 날도 전에 친지들에게 붙였다지 않는가?” “그도 그렇지만 자네 칠순잔치는 느닷없이 어제 결정했다구 통보를 하니 그게 합당하다구 생각하는가. 요새 생일은 땡겨서 자식들이 다 모일 수 있는 토요일이나 일요일루 하는 일이 많으니께 자네 칠순두 땡기는 김에 하루 더 땡겨서 토요일루 하는 게 어떻겠는가. 일요일은 혼사와  겹치니께 말여.” “그건 안 돼. 토요일은 딸램이가 못 온댜. 그래서 내가 우겨서 일요일로 결정한겨.” “우길 게 따로 있지 그래 뻔히 알면서 우겨 그래. 그리구 아닌 말루 요새 칠순잔치 하는 사람 별루 없어, 요샌 장수시대라 일흔은 나이두 아니라잖여 우리 동네두 칠순잔치한 사람 하나두 없잖여 그러니 팔순에 떡 벌어지게 하는 게 워뗘?” “그때꺼정 워떻게 기다려 지금 살아 있을 때 해버려야지.” “왜, 그 안에 죽으까바 그랴. 안 죽어 이 사람아. 자네 그 불통 고집을 부려서래두 아마 백 살은 살 걸?” “여하튼 자네들은 내 불알친구들이잖여. 그래 선대 대대로 살아온 죽마고우인 내가 더 중햐 중간에 굴러들어와 자식 장가보내는 정가네가 더 중햐. 잘 살펴서 이번 일요일날 청주 큰 식당에 와서 배 터지게 먹기들이나 혀. 자 그렇게들 알구 난 이만 일어나네.”그리곤 휭하니 가버린다. “저, 저, 저 불통, 불통 똥고집불통 보게나….” 동네사람들이 혀를 끌끌 찬다. 저 불통이 얼마나 감바리노릇을 하는지 제 이익을 노리고 눈치 빠르게 제 성 본관을 버리고 이름난 본관으로 가문을 바꿔버렸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고, 제 선친에게서 어깨너머로 터득한 지관노릇으로 동네 상사 시 묘 자리를 자청해서 봐주고는 터무니도 없는 댓가를 요구하는 그런 위인이기도 해서 동네선 같은 또래 친구들조차도 돌려놓는다.
 이번에 첫 자식 장가들이는 정가는 제 엄마아버지 따라 아장아장 걸어 들어와서 지금까지 50여 년을 한 마을에 살고 있는, 불통 말따나 타곳에서 들어온 사람이다. 그러니 처음엔 동네에서는 그 집식구들 대하기를 건성으로 대하곤 마음을 열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소위 텃세를 부리면서 비하하고 하대하는 이도 있었다. 정가의 선친을 머슴으로 들여놓은 큰대문집 어른조차도 들어온 떠돌이라 해서 3년 동안 세경을 묶어 놓고 주지 않으면서 행랑채에 기거시키곤 감시의 눈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행여 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처럼 홀연히 떠나버리지나 않을까 떠날 땐 무엇인가를 챙겨가지나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 3년 치의 세경을 목돈으로 해서 동네 어구의 빈집을 사서는 눌러 살면서 동네의 논밭일이며 허드렛일을 몸 사리지 않고 해주니 인제 동네서는 오히려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어허, 저 ‘묵이 배’를 우리가 잘못 짚었어. 그래서 사람이든 물건이든 오래 두고 겪어봐야 혀.”  ‘묵이 배’라는 건 배의 한 가지로, 처음 딸 때에는 맛이 시고 떫고 빡빡하지만 오래 묵힐수록 맛이 달고 물이 많아져서 농가에서는 갈무리 해두고 먹는다. 그러니까 동네사람들은 그제야 비로소 맘을 열고 그들을 대하게 된 것이다.
 이제 부모를 여읜 그 어렸던 정가가 장성해서 첫 자식 장가를 들이려고 한다. 일가친척도 없는 정가인지라 동네어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어르신들, 저 장가들 때도 제 선친이 동네어르신들께 상의를 올렸다고 했는데 지도 천상 그래야겄네유. 일거일동을 다 그르쳐 주셔유.” “자네가 벌써 자식 혼사를 치르는구먼. 암, 암 어련히 잘 할까마는 우리가 도울 건 돕구말구. 그날은 우리 동네가 다 단체루 읍내예식장에 가서 축하를 해야제,”
 이랬는데 느닷없이 불통이 정가네 혼사일과 같은 날에 칠순잔치를 한다니 그것도 읍내가 아닌 청주에서. “칠순잔치를 읍내식당에서 하면 예식 끝나고 참예할 수도 있으련만 청주에서 한다니 원!” “큰아들이 제 애비 낯 세우려고 대처로 정했다는구먼.” “ 한 쪽으루만 쏠리면 다른 한 쪽이 서운해 할테니 각자가 결정할 수밖에 없겠는 걸. 난 내심 결정했네.”
 이러하니 그날이 돼봐야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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