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 속의 한국사 <5>

▲ 무령왕 탄생지 우물.

‘일본서기’ 461년 각라도 출생 기록
 무령왕 태어난 후 ‘왕의 섬’ 불려
 충남 공주와 탄생 기념비석 건립
 양 지역 매년 6·10월 축제 개최

 오이타현 북동부 히메지마무라 신사
 가야 왕자 관련 전설 내려와
‘일본서기’ 스닌천황편에선
 대가야국 왕자 아라시토 기록돼

 오사카 히메코소 신사에는
 한반도서 부인 찾아 건너온
 신라 왕자 천일창 전설 전해져
● 사가(佐賀) 현
-나고야성(名護屋城)과 박물관
나고야성은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출병한 일본군의 전초기지였다.
1591년 도요토미 히테요시(豊臣秀吉)의 명에 의해 착수된 나고야성은 조선과 가깝고 전략적으로도 유리한 위치인 큐슈의 북서쪽 끝에 만들어졌다.
임시 전략기지의 성격을 띤 이 성의 총 면적은 14만㎡로 당시 오사카성 다음가는 규모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현해탄이 보이는 언덕 위에 나고야성의 유적 및 전쟁에 참여한 다이묘들의 진지의 흔적만이 남아 있고 옛 모습을 확인 할 수는 없다.
다만 광대한 유적의 보존 정비 및 한·일관계사의 연구, 전시를 목적으로 하는 나고야 박물관이 세워져 있어 필요한 자료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개관시간] 오전 9시~ 오후 6시(입관은 오후 5시 30분까지)
[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휴일인 경우 익일), 연말(12월 29일~31일)
[주소] 847-0401 사가현 카라츠시(唐津市) 진제이마치 나고야(名護屋) 1931-3
전화=☏0955-82-4905.
팩스=☏0955-82-5664.
이메일 nagoyajouhakubutsukan@pref.saga.lg.jp
[교통편] 후쿠오카(福岡) 하카타역(博多驛)에서 지쿠히선(筑肥線)을 타고 카라츠역(唐津驛)에서 내려 다시 버스로 40분 소요. 사가역(佐賀驛)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가라츠선(唐津線)을 타고 가라츠역(唐津驛)에서 내린다.

-가카라시마(加唐島) ‘백제무령왕 탄생 전승지’의 비
사가현 카라츠시 가카라시마는 461년(또는 462년) 백제의 무령왕이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섬이다.
무령왕이 태어난 후부터 이 섬을 ‘왕의 섬’이라고 불렀다.
무령왕이 이 섬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가카라시마는 ‘시마’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인연을 바탕으로 한국의 충남 공주와 이 지역의 시민이 중심이 돼 무령왕 탄생을 기념하는 비석을 2006년 6월 25일 건립했다.
비석 건립은 21세기 양 지역 간의 교류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양 지역은 매년 6월(가카라시마)과 10월(공주)에 축제를 열고 있다. 매년 공주와 가라츠 사람들이 40여명씩 상호간 축제에 참가하고 있다.

[백제 25대 왕 무령왕 탄생의 유래] - 일본서기
‘일본서기’에 무령왕이 “유라쿠(雄略) 5년(461)에 츠쿠시(築紫: 지금의 규슈) 각라도(各羅嶋)에서 출생했다”고 하는 기사가 있다.
이 각라도(各羅嶋)가 가카라시마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전승돼 왔다. 그런데 1971년 충남 공주의 무령왕 묘가 발견되었을 때에 묘지석이 나왔는데(무령왕은 523년 62세로 사망했다.) 왕의 탄생년도가 일본서기와 1년 차이인 462년으로 판명됐다.
이로 인해 일본서기의 무령왕 가카라시마(加唐島) 탄생 설의 신빙성을 높여 주고 있다.
백제 24대 개로왕이 그 동생인 곤지(軍君)를 왜로 보낼 때에 임신한 부인을 동행시키면서 아들을 낳으면 백제로 돌려보내 달라고 했다. 이에 출산하여 돌려보낸 아이의 이름은 세마(시마)라고 했다. 이가 무령왕이다.
현재까지는 무령왕의 탄생지에 대한 한국에서의 기록은 찾아 볼 수 없고 단지 일본서기의 기록만 있다.
● 오이타(大分)현
-히메코소 신사(比賣古曾神社)
오이타현 북동부 히메지마무라(姬島村)에 있는 이 신사는 가야의 왕자와 관련된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일본서기’ 스닌천황(垂仁天皇)편에는 지방에서 전하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스닌천황 때에 이마에 뿔이 있는 사람이 후쿠이(福井)현 해안가에 도착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묻자 오호가라(意富加羅·대가야)국의 왕자인 쓰누가 아라시토(都怒我阿羅斯等, 쓰누가는 가야의 최고 관직인 각간(角干)이고, 아라시토가 이름임)라고 했다(중략). 그가 본국에 있을 때에 황소에 농기구를 싣고 농장으로 가고 있었는데, 황소가 갑자기 없어졌다. 황소의 발자국을 따라 가 보니 관청으로 들어갔다. 이때 어떤 노인이 나타나 “당신이 찾는 소는 이 관청에 들어갔는데 관리들이 어차피 잡아먹을 것이니 우리들이 먹고서 나중에 주인에게 값을 치르자 하고 잡아먹었습니다. 관리들이 소의 값을 물으면 다른 물건을 이야기하지 말고 관청에서 제사지내는 신(神)을 달라고 하시오”라고 이야기 했다. 아라시토는 노인의 말대로 했는데, 관청에서 제사지내던 신은 흰 돌이었다. 밤에 그 돌을 침상에 놓고 잤는데 돌이 어여쁜 여인으로 변해 아라시토의 부인이 되었다. 그런데 아라시토가 다른 곳을 다녀와 보니 그 여인이 사라졌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동쪽으로 갔다고 했다. 이에 그 부인을 쫓아 일본으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 여인은 나니와(오사카의 난파·難波)에 가서 히메코소신사의 신이 되었고, 또 구니사카마치(國東町)쪽에 가서 히메코 신사의 신이 되었다. 그래서 두 곳에서 모두 제사지내고 있다.
위의 전설처럼 오사카의 히메코소 신사(比賣許曾神社)에도 한반도에서 부인을 찾아온 왕자의 전설이 전하는데, 주인공은 가야가 아닌 신라의 왕자 천일창(天日槍·아메노히보코)이다. 아마도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자신의 신을 제사지내던 곳과 관련된 전설이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두 신사 외에도 규슈와 세토나이카이 연안에 같은 이름의 히메코소 신사(한자는 姬社神社, 姬古曾神社 등으로 다양함)가 여럿이 있는데, 모두 이 신사들이 분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신사가 있는 히메섬의 이름은 바로 신사의 이름에서 연관된 것이다. 이는 신라의 천지일창(天之日矛) 전설과 비슷하다.
[주소] 오이타현(大分縣) 히가시쿠니사키(東國東郡) 히메시무라(姬島村) 5118
[교통편] 구니사키(大分半島) 구니사카마치(國東町)의 이미항(伊美港)에서 페리선으로 25분, 하루 12회 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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