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복 <문학평론가·서원대 교수>

 

“선생님, 저 ㅎ고등학교 2학년 5반 서완입니다.” 연구실에서 갑자기 받게 된 한 통의 전화 음성은 낯선 중년의 목소리였지만, 그 내용은 영락없는 고등학생이었다. 가끔 제자들의 전화를 받을 때면, 그것도 졸업한 지 오래되어 한참동안 연락도 없었던 제자들의 전화를 받을 때면 상대가 잘 기억되지 않아 약간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위의 전화 상대는 필자가 1980년대 초반에 2년 동안 ㅎ고등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한 시절에 겪었던 일이라, ‘서완’이라는 이름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당시 매우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공부도 우수하게 잘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걷는 것이 약간 불편한 장애를 지니고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착하고 순수한 영혼을 지닌 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담임이었던 나는 그 학생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곤 했던 것 같다.

“선생님, 신학대학 졸업하여 목사안수 받고 처가 동네가 있는 해남에 개척하여 목회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선생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꼭 한 번 뵙고 싶습니다.” 그 때 제자와의 통화 이후 잠시 동안 2학년 5반 담임 교사 시절을 떠올려보았지만, 그들이 지금은 50이 넘어가는 중년이 되었겠다는 생각이외에 회상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 후로도 목사가 되어 있는 그 제자와 가끔 안부 통화정도는 하고 지냈지만,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다. 그러던 차에 2015년 9월에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학과 학생들을 인솔하여 학술답사를 전남 강진 해남 일원으로 가게 되어, 그 제자에게 연락을 하였더니 “선생님, 이번에는 꼭 뵙겠습니다.”라고 답신이 왔다. 첫 째 날 답사일정을 마치고 저녁 7시쯤 숙소에 도착했더니 한 중년의 아저씨가 “선생님, 서완입니다.”하며 큰절을 하더니 어린아이처럼 뜨겁게 내 손을 잡았다. 중년의 대머리가 되어 내 앞에 불쑥 나타난 제자에 대한 반가움에 눈시울이 적셔졌다.

다음 날 일정에서 조금 여유로운 낮 시간에 그 제자는 나를 데리러 답사장소에 다시 왔다. “선생님 제가 개척하여 목회활동하고 있는 교회와 저희 식구들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하면서 나를 태우고 20여분 달려 간 곳은 너무나 한적한 농촌의 작은 교회였다. 곁에 딸려 있는 작은 사택에서 나를 반기며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사모와 두 분의 어른(장인·장모님)이었다. 주변의 농지를 개간하여 농산물도 꽤 많이 수확하여 판매하면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함께 옛 얘기에 빠져있는데, 대표학생으로부터 휴대전화가 왔다. 지금 학생들 땅끝마을로 이동하는 중이니 선생님은 그곳으로 오시라는 전갈이었다. 그리고 저녁은 돼지고기 구워먹을 계획이며 지금 마트에 장보러 가는 중이니 선생님 필요하신 것 있으면 말씀해주시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김치 없이 돼지고기 먹던 안타까운 몇 년 전의 답사가 생각나서 김치 넉넉하게 사오도록 해라하고 주문을 했다. 그 순간 사모가 “교수님, 김치는 사지 마세요.”라고 완강하게 말하여 다시 대표학생에게 김치는 사지 말라고 했다. “잘 됐습니다. 김장김치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학생들이 90명이 넘는걸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날 저녁 100여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김치를 우리 학생들과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였고, 아름다운 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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