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수필가)

▲ 박영자(수필가)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았다.
새 달력에 그려진 장닭의 위용이 만만치 않다. 올해는 ‘붉은 닭’의 해라서 인지 볏도 더 커 보이고 긴 꼬리를 드리운 모습이 열정적이고 당당하게 느껴진다. 고개를 번쩍 쳐들고 “꼬끼오~~” 호령 하는 듯한 울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온다.
  닭은 아침을 알리는 상서로운 동물로 알려져 있다. 새벽을 알리는 동물로서 닭의 울음소리는 시계를 대신 했으며 귀신을 쫓는 기능을 가진다고 까지 했다. 그래서 새벽닭이 울면 일어나 농사일을 시작했고 닭이 울기 전에 제사를 지내야만 했으며. 닭이 울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설화에 닭이 등장하는데, 신라왕이 닭의 울음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흰 닭이 울고 있는 궤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대구의 옛 이름이자, 고유어 이름인 달구벌의 달구는 닭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닭은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조류이며 12지 중의 10번째 동물이자 유일한 새이지만 몸에 비하여 날개가 짧게 퇴화되어 몇 미터밖에 잘 날지는 못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마당에 닭들을 풀어 키웠기에 닭을 흔하게 보며 자랐다. 하지만 지금은 일부러 양계장을 찾아가기 전에는 닭 보기도 쉽지 않다. 닭고기는 흔하지만 도시 한 복판에서는 닭 기르는 모습은 볼 수 없고 닭 울음소리도 멀어졌다. 10년전 이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만해도 구룡산 기슭에서 닭 기르는 이들이 있어 새벽 닭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소리도 자취를 감추었으니 그 닭 울음소리마저 그립다.
  닭은 꿩과에 딸린 새로 약 3,000~4,000년 전에 인도 말레이시아 미얀마 등지에서 기르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닭은 토종이라고 알려진 것도 사실은 인도 미얀마 말레이시아의 숲에 사는 멧닭을 집에서 기르도록 길들인 것이다.
  사람과 친숙한 조류인만큼 동물실험에서도 자주 활용된다. 심지어 조류 중 가장 먼저 유전자 해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2000년대 중후반부터 닭의 유전자를 조작해 공룡처럼 생긴 닭을 만들려는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물론 이전에도 쥐의 치아형성 유전자를 이식해 이빨이 있는 닭을 만들거나 날개 형성 유전자를 조작해 날개 대신 앞다리가 달린 닭을 만든 일이 있다. 고생물학자 존 호너가 지지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생명윤리 문제 등의 이유로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닭의 수명은 7~12년 정도이지만 닭과 인간이 가깝게 살다보니 도축되는 모든 동물들 중에 가장 많이 희생되는 동물로 한국에서만 연간 10억 마리 이상 도축된다고 한다. 가장 많이 사육되는 종류는 이탈리아 원산인 난육겸종의 백색 레그혼이다.
  닭은 5천년간 인류의 친구로 살았으며 문(文), 무(武) 용(勇) 인(仁) 신(信) ‘다섯 가지 덕(德)을 갖추었다고 한다. 첫째 머리에 관을 쓰고 있으니 문(文)이요. 둘째 발에 날카로운 며느리발톱이 있어서 무기가 되니 무(武)요, 셋째, 적과 잘 싸우는 용기가 있으므로 용(勇)이요,. 넷째, 먹을 것을 얻으면 서로 불러 가르쳐 주므로 인(仁)이요, 다섯째 울음으로 때를 알려주므로 신(信)이다.
  멍청한 사람을 가리켜 ‘닭대가리’라고 하지만 사실은 닭이 웬만한 동물보다 똑똑하고 무엇보다 먹이를 먹을 때 큰놈이 나중에 먹고, 작은 놈이 먼저 먹는 높은 지능을 가진 꽤나 사회적인 동물이다. 사회적 약자를 먼저 배려하는, 한 마디로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동양에서는 오독의 천적으로 풍수에 따라 해당 생물을 억누르는 역할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다섯가지 덕을 갖춘 동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에 비하여 인간은 어떤가. 요즘 사람들은 지덕을 갖춘 공부는 포기하고 오직 대학입시에 매달리고, 취업을 위한 공부에 연연하니 진정한 관을 쓰지 못할 것이니 문(文)이 없음은 물론이다. 과유불급이라 했으니 닭 발톱보다 더한 독설(毒舌)을 가지고 있으므로 무(武) 또한 상실 된지 이미 오래 이고, 정면에서 싸우기 보다는 비겁하여 뒤통수를 치는 경우가 더 많으니 진정한 용(勇)도 없는 것이다. 먹이를 보면 나 먼저 차지하고 남아도 이웃과 나눠주기를 주저하는 마음이고 보면 인(仁)의 마음도 사라진지 오래요, 모든 사람들이 각자 알람의 울림에 의지하면서부터 밤낮이 뒤바뀐 시간 속에 허덕이며 살아가게 되었으니 하루 한 번 닭 울음에 의해 통일되게 움직이던 신(信)을 잃어버린지 또한 오래 되었다. 닭을 보며 배우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인간 사회는 타락한 게 아닌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가 시끄러운데 요즘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하여 닭들도 수난의 시대다. 정유년 새해에는 붉은 닭의 위풍당당을 닮아 모든 일이 잘 풀리고 닭처럼 오덕을 실천하는 한해가 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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