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심리하기 위해 3일 오후 열린 헌법재판소의 첫 공개변론에 당사자인 박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았다. 헌재 전원재판부(재판장 박한철 소장)는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오는 5일 2차 변론기일을 갖기로 했다. 박 대통령이 또 나오지 않으면 대통령 없이 심리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한다. 박 소장은 이날 모두 발언에서 "이 사건이 우리 헌법질서에서 갖는 엄중한 무게를 깊이 인식하고 있다"면서 "대공지정(大公之正· 매우 공평하고 지극히 바름)의 자세로 엄격하고 공정하게 최선을 다해 심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쏠려 있는 국민의 높은 관심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이해된다.

박 대통령의 변론 불출석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2차 기일에도 나오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법률적인 측면만 고려하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변론에 꼭 대통령이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헌재가 구랍 30일 3차 준비절차기일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변론기일 출석 요청을 기각한 것도 같은 맥락인 듯하다. 헌재 결정에 구속력이 없고 박 대통령 측 법률대리인이 이미 불출석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다만 핵심 당사자인 박 대통령이 첫 변론기일에 나오지 않음으로써 국민적 관심사인 이번 헌재 심리의 모양새가 다소 옹색해지는 결과가 됐다. 신속한 심리 진행 계획을 천명한 헌재 입장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날 모두 발언에서 박 소장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의결돼 국정 공백을 초래하는 위기상황임을 잘 인식하고 있다"면서 청구인(국회)과 피청구인(대통령) 양측에 협력을 당부했다.

물론 박 대통령도 법률적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 헌재 변론에 출석하지 않는 것이 방어권 행사 수단의 하나일 수도 있다. 2004년 탄핵심판 때 노무현 전 대통령도 변론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노 전 대통령 사건과 확연히 다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쟁점들이 많고 내용도 복잡하다. 재판부와 이해 당사자들이 봐야 할 검찰 수사기록만 3만2천 쪽에 달한다. 게다가 청구인과 피청구인 양측이 주요 쟁점들을 놓고 첨예하게 사실관계를 다투고 있다. 치열한 법정공방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헌재가 첫 준비기일에서 탄핵소추의결서의 쟁점들을 5개 유형으로 압축한 것도 절차적 지연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이다.

사안의 민감함을 고려할 때 헌재의 이런 노력은 일단 평가할 만하다. 명분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심리가 불필요하게 지체되지 않아야 대통령 탄핵소추와 대통령 권한 정지에 따른 국정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한철 소장과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 만료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박 소장은 1월 31일, 이 재판관은 3월 13일 퇴임한다.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을 내리려면 전체 9명의 재판관 중 6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2명이 퇴임한 상태에서 7명이 결정을 내리면 심판의 완결성이 훼손될 수 있다.

헌재는 2월까지 매주 한두 차례, 모두 10여 차례의 심판 일정을 잡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헌재는 첫 변론기일 이틀 뒤인 5일 2차 기일을, 다시 닷새 뒤인 10일 3차 기일을 열 예정이다. 2차 기일에는 안봉근·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과 윤전추·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3차 기일에는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이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변론 개시 1주일 만에 핵심 증인들을 반 이상 신문하는 셈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헌재가 이정미 재판관의 퇴임일 이전에 심판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관측은 단지 관측일 뿐이다. 모든 권한은 헌재가 갖고 있고 결과에 따른 책임도 오롯이 헌재가 져야 한다. 헌재의 입장은 첫 공개변론에서 박 소장이 한 모두 발언에 응축돼 있다.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말고 국민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켜 공정하게 심판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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