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의 <산악인·사진작가>

 

산에 청춘을 바쳤다면 과장일까.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산과의 인연을 빼면 남는 게 없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산행은 1980년 1월 말경에 있었던 설악산 합동동계훈련 캠프였다. 당시 산악인들의 로망이던 히말라야 원정을 목표로 한 훈련이었다.

날씨와 적설상태, 그리고 기온이 가장 낮은 시기를 택하고 훈련 내용도 히말라야 고산등반을 목표로 빙폭과 암·설벽 훈련으로 짜여졌다. 충북대와 청주대 산악부원들을 주축으로 11명의 대원이 선정되었고 고강도 훈련을 목표로 출발했다.

15일간 진행된 훈련 중 대미를 장식한 산행은 설악산에서 가장 난코스로 알려진 ‘천화대’ 릿지(능선) 등반. 2박 3일의 훈련을 위한 식량과 장비 체크가 끝나고 출발신호만을 기다린다.

베이스캠프에는 조성상 부대장을 비롯하여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대원을 남겨놓고 6명만이 출발하기로 했다. 코스의 난이도를 잘 아는 대원들도 긴장을 한 듯 말이 없다. 모두의 얼굴이 까맣게 변해 검둥강아지 꼴이지만 눈만은 반짝이며 의기에 차있다. 10여일이 넘도록 세수도 못 하면서 밤마다 피워대는 모닥불 연기에 그을려 볼 상 사납기가 노숙자도 도망칠 정도다.

드디어 출발. 영하 16도. 출발부터 암벽등반을 해야하므로 많은 장비들이 밖으로 나와 걸을 때마다 부딪치는 소리가 신경이 쓰이지만 개념 할 여유가 없다. 선두는 이미 바위에 붙어 ‘확보-’를 외친다. 눈이 붙어있는 바위는 미끄러워 길을 내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대부분의 암벽등반에서와 같이 선등자가 올라가면 다음 사람은 선등자와 연결된 로프를 잡고 확보를 해준다. ‘확보’란 선등자가 추락 시 최선의 안전을 위한 행동으로 등반자가 추락 등 위험을 느끼는 순간 외치는 공통된 신호이다.

그 신호에 의해 확보자는 줄을 당겨 인공적으로 설치한 확보지점에 줄이 걸려 추락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각자의 몸을 연결한 로프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어디까지 날아서 떨어질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오른쪽이 ‘설악골’, 왼쪽이 ‘잦은바위골’, 능선의 싸늘한 바람이 가슴속까지 짜릿하게 후비고 들어온다. 이 코스 자체가 길이란 없다.

거대한 바위들로 이어진 칼날 같은 능선뿐이다. 오른쪽 계곡위로 1275m봉이 험상궂게 서있다. 북쪽으로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공용능선’이 동해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눈보라를 만들고 있다.

비상식으로 점심을 때운다. 서둘러서 출발을 해야 한다. 오늘 중으로 ‘범봉’을 넘어야 한다. 각자가 맨 배낭 무게는 장비와 식량을 합쳐 20kg을 넘는다. 먹고 자야 할 기본 장비와 바위를 오르고 내릴 암벽장비들이다. 말없는 침묵도 잠시 뿐 “출발”이라는 명령과 함께 각자의 역할로 돌아간다. 영하 20도.

이제 마지막 관문인 ‘범봉’을 넘어야 한다. 오후 4시가 지난다. 대원들을 독려하고 간식을 챙기며 서둘러 올라갔다. 속도를 냈지만 100여 미터의 수직에 가까운 암벽을 오르는 데는 시간이 걸려 정상에 올라서니 5시가 넘었고 주변은 어둠이 덮이기 시작했다.

산에서는 금세 어두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서둘러 하강을 해야 했다. 어림잡아 100미터가 넘는 수직암벽을 8자 하강기에 연결된 로프에 의지하고 하강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강하던 대원이 다시 올라왔다. 바람 때문에 몸의 균형을 잡기 어려워 도무지 하강을 못하겠단다. 다시 시도를 명령해본다.

오늘 내려가지 못하면 이곳에서 비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역시 2~3m 내려가더니 끌어 올려 달란다. 결단을 내려야하는 시간이다. 주변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비박할만한 곳이 없다. 거대한 암벽 봉우리 상단에서 강풍과 싸워가며 영하 20도의 밤을 보내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하는 수 없이 천언채 대원을 시켜 상단 바위돌출부에 로프를 고정시키고 올라왔던 길로 로프를 내렸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랜턴불빛에 의지해 6명의 대원이 이곳까지 내려오는 데 1시간이 소요됐다. 모두는 로프에 의해 연결되었지만 극도로 긴장된 상태. 추위도 문제지만 바람소리가 더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더 이상의 하강은 무리였다. 오늘 이곳이 비박 장소라는데 는 두말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최대한 바람을 막고 버너에 불을 붙이고 저녁을 위한 물을 끓인다. 메뉴는 떡라면이다.

수직 바위를 따라 비스듬히 돌아간 폭 20여㎝ 정도 되는 난간에 6명의 대원이 줄로 몸을 묶고 서서 저녁으로 설익은 떡라면을 넘긴다. 따뜻한 국물이 목을 따라 넘어가는 기분이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 지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기온은 더 내려가 움직이지 않는 발가락이 아파온다. 모두들 계속 발을 움직이게 하고 먹고 난 식기들을 배낭에 넣어 줄에 매달았다. 위에서부터 한명 씩 침낭에 넣어 로프로 묶은 다음 난간에 최대한 붙여 눕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누울 장소는 길이가 반밖에 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상체를 묶고 앉아서 잠을 청했다. 이렇게 긴 밤은 처음 이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하반신이 마비되어 말을 듣지 않았다.

로프 끝자락을 이용해 사정없이 두드리고 한참을 뛰고 해서 겨우 움직였다. 아침 태양이 이처럼 반가운 날이 있었던가. 모두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무사한 것에 감사했다. 이렇게 생과 사의 혈투를 벌이는데도 못 본체 제자리를 지키는 말없는 산, 이 산이 아직도 나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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