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기(논설위원/한국교통대 교수)

▲ 홍연기(논설위원/한국교통대 교수)

다사다난함을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운 병신(丙申)년이 지나고 정유(丁酉)년의 새해가 밝았다. 닭의 해인 정유년의 시작은 공교롭게도 조류독감(Avian Influenza, AI)이다.

이번 조류독감은 지난해 11월 중순에 최초로 신고 되었다. 이후 발생지역이 늘어남에 따라 지난 12월 16일 위기경보 단계를 심각단계로 격상한 이래로 2000만 마리가 넘는 가금류가 살처분 되었다. 조류독감의 확산으로 인해 달걀 가격이 폭등했을 뿐 아니라 향후 수개월 동안 닭고기 생산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최근 경기도의 한 마을에서 고양이가 조류독감에 걸려 폐사되었다는 것이다. 조류 간에만 전염된다고 알려졌던 조류독감이 포유류인 고양이에게 전염되었다는 것은 사람으로의 전염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로 지금 유행하는 H5N6는 중국에서 이미 17명의 사람을 감염시켰고 그 중 10명이 사망한 사례가 있다. 조류독감에 감염된 개체와 매우 밀접한 접촉이 없는 한 인체로의 감염은 불가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마냥 마음 놓고 있을 수 없을 터이다.

국내에서 조류독감으로 인한 피해는 이번만이 아니었다. 이미 우리나라는 2014~2015에 걸쳐 발생했던 조류독감으로 인해 1900여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 한 바 있다. 이번 조류독감 파동은 단지 한 달여 만에 지난 살처분 수를 능가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와 같은 시기에 조류독감이 번졌던 일본의 경우 약 90여만 마리만을 살처분하는 선에서 대응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우리 정부의 대응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조류독감 발견 직후 총리를 중심으로 위기관리 센터를 만들어 즉각적으로 대응하였다. 반면 우리 정부는 조류독감 발견 이후 한 달이 지나서야 관계 부처 회의를 열고 농식품부 산하에 대책반을 만들었다고 하니 세월호 참사 이후 매번 거론되는 골든타임 놓치기, 컨트롤 타워 부재가 이번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매년 조류독감으로 온 나라가 고통을 겪어왔음에도 매번 속절없이 피해를 봐야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작금의 조류독감으로 인한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고 향후 같은 피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정부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미물이라고는 하나 살아있는 닭을 그대로 매장하는 살처분을 하면서까지 닭고기를 소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흔히 ‘공장식 축산’으로 대표되는 사육방식은 동물을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라 단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뽑아내는 생산물로 간주하는 잔혹한 육류 생산 방식이다. 닭의 자연 수명이 20~30년에 달하지만 공장식 축산을 통해 사육되는 기간은 불과 한 달 남짓이다. 달걀을 생산하는 닭은 케이지에서 키워지는데 그 면적이 불과 A4 용지 한 장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결과 공장식 축산을 통해 생산되는 닭의 상당수가 비정상적으로 자라고 각종 질환에 노출되게 된다. 이는 비단 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돼지, 소 등 우리 식탁에서 늘 볼 수 있는 육류를 제공하는 가축들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다. 결국 보다 값싸게 축산품을 제공 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살처분’이라고 하는 무자비한 생명경시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과도한 욕심을 충족하기 위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지거나 가둘 수는 없다.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가축들을 공장식으로 사육하는 것은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 뿐 아니라 결국은 인간의 본성마저 파괴하게 된다. 실제로 살처분 현장에 투입된 공무원들 중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당장에 공장식 축산을 그만두기는 어렵지만 살아있는 생명이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 동물보호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은 밀집된 환경에서 가축을 사육하는 방식을 개선하여 가축의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역시 귀 기울여볼만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매년 구제역, 조류독감 등이 반복되었고 공장식 축산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이들 질병에 따른 위협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아마 우리가 모르고 있을 신종 감염병이 있을 지도 모른다. 정부도 매년 뒤늦은 대량 살처분으로 가축 감염병에 대응할 것이 아니라 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감염병에 취약한 가축 사육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 수립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엄을 지켜주는 것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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