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중부대 교수)

▲ 최태호(중부대 교수)

 우리 후손들을 생각하면 어떤 직업이 좋을 것인가, 무엇을 해야 보람 있게 살 수 있는가 하는 걱정이 많다. 미래는 데이터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맛이 사라질 수도 있다. 기계는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있다면 ‘감성’일 것이다. 인간과 기계(AI)가 가장 다른 면이 있다면 감성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같은 일을 아무 이유 없이 반복하게 한다면 짜증을 내고 싫어한다. 그러나 컴퓨터는 같은 명령어를 백 번 반복해도 짜증내지 않는다. 웃음과 눈물을 아는 기계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호에 말한 것처럼 기억하고 분석하는 것은 기계의 몫이다. 주판알을 굴리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암산하는 방법과 주판알을 굴리며 더하기와 빼기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것을 계산기가 대신하고 있다. 앞으로의 세대에도 주판을 통한 교육은 필요하다. 통섭의 시대이기 때문에 그렇다. 어머니에게 바느질을 배운 와과의사의 말이 기억난다. 미국에서 수술 잘 하기로 소문난 한국인 외과의사의 말이다. 자신이 왜 이렇게 섬세한 일을 잘 하는지 묻는 미국인들에게 ‘어려서 어머니께 바느질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그것이 외과 수술하는데 큰 도움을 준 것 같다는 인터뷰를 읽었다. 우리의 후손들은 노동과 관련된 일자리는 것의 로봇에게 빼앗길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간적인 일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감성과 관련된 일이라고 본다. 예전에 필자가 <문학과 성>이라는 책을 쓸 때 인간이기 때문에 잔인하다고 했다. 배가 불러도 사냥을 하고 살생을 즐기는 것이 인간이다.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없는 말을 만들어서 모욕을 주기도 한다. 자신이 높아지지 위해서 권모술수를 부리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악어의 눈물을 보이고, 유아기적 성향으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연기를 하기도 한다. 거짓 눈물에 사람들은 잘 속는다. 필자의 후배 중에 울면서 거짓말하는 녀석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아이가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느꼈지만 사실은 위장된 눈물이었던 것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잔인하고 위선적일 수도 있다. 인간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차라리 인간적이라는 말보다는 도덕적이라는 말이 더 소중할 수도 있다. 요즘 스미싱이나 전화사기를 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놀랍다. 그렇게 좋은 기술(?)과 언변을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보지만 이것은 항상 상상으로 끝난다. 학생들도 죄를 짓고도 부끄러운 기색이 전혀 없다. 교사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노인들이 나무라며 욕을 하는 것이 예사가 되었다.
 30년 전의 일이다. 중학교에 근무하던 시절에 ‘한문’과 ‘전산’을 선택과목으로 정해야 했다. 필자는 한문을 선택하자고 했고, 다른 99%의 교사들은 전산을 선택하자고 했다. 그 때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전산’은 컴퓨터 회사에서 팔아먹기 위해 쉬운 것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DOS를 쓰지만 앞으로는 더 쉬운 것을 개발할 것이니 인성교육인 한문을 선택과목으로 하자”는 것이 필자의 논리였다. 그 주장은 무참하게 무시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컴퓨터는 윈도우와 마우스로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인성은 뒤켠으로 사라졌다. 물론 컴퓨터만 한다고 인성이 다 나빠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것을 반성하게 한다. 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 앞으로의 교육은 인성과 감성을 계발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인간만이 지닌 재능을 살려서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남을 비방하고 험담을 하면 반드시 그 입이 먼저 더러워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기계와는 다르다.
 미래에는 외톨이가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고, 사이버 공간에 갇혀 있는 인생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이들을 미연에 방지하고 구할 수 있는 인간교육이 되어야 한다. 기계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계에게 맡기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편한 것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적당히 몸을 움직여야 하고, 몸에 좋은 먹을거리를 찾아야 한다. 가장 단순한 것이 미래의 방편이 될 수도 있다. 운동처방사, 미래형 농업인, 심리상담사, 데이터분석가 등이 미래에는 좋은 직업으로 각광받을 수 있다.
 ‘멋’이라는 단어가 있다. 한국인의 멋은 참으로 아름답다. ‘멋’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만한 외국어도 없다. 한국인의 풍류를 잘 담고 있는 단어가 ‘멋’이다. 멋있는 삶을 살고 싶다. 인간적인 것은 인간의 멋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을 통해 인간의 멋을 살리고 후손들의 감성을 좋은 곳으로 인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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