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이 ‘몰락의 길’로 추락할 때엔, 거기에는 어떤 ‘개연성’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어찌어찌한 일들 때문에 이렇고 저런 길로 빠져들게 됐다는 등 자연스런 인과율에 따른 삶의 맥락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화여대 류철균 교수의 민망하고 부끄럽기 짝이없는 도덕적·법적 일탈은 그의 작품을 즐겨 읽었던 독자들에게 참으로 ‘뜬금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이화여대 국문과 학과장까지 역임한 인문학자에다, 이인화라는 필명으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소설가(예술가)임에도, 그가 행한 조잡하고 추악한 행위는 실망감을 넘어 큰 분노로 이어지기에 충분했다.
인문학(人文學·humanities)은 인간의 근원 문제와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요,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인간 활동과 그 산물이다. 그런데 그가 벌인 행위 어디에도 인문학자나 예술가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되레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문학자와 예술가들의 얼굴을 화끈하게 만드는 부끄러운 모습들 뿐이었다.
1993년 출간돼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소설가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은 세계적 지성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를 표절했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가적 역량을 충분히 보여줬다는 평을 얻었다.
1992년 1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또한 “한국 문단에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국내외 소설들에서 여러 부분들을 옮겨온 명명백백한 표절”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한 ‘인간의 길’은 박 전 대통령을 영웅으로 묘사하고 군사독재를 지나치게 미화해 문단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화여대 미디어센터장까지 맡으며 남부러울 것 없었던 그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지난 3일 구속 수감됐다. 기말고사 당시 독일 체류 중이었던 정씨의 답안지를 조교에게 대신 써주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지나가는 말’로 했을 뿐, 대리 시험은 조교들의 탓이라고 뻔뻔하게 책임전가했다. 교수와 조교 사이 ‘갑을 관계’가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대학원 논문 통과라는 생사여탈권을 교수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교수도, 인문학자도, 예술가도 아닌, 참으로 몰염치하고 저급한 인간의 모습이다.
한때 일각에서이지만, 한국의 지성이라는 평가까지 얻었던 그가 무엇이 아쉬워 이렇듯 몰락해버린 것일까. 그 기저에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듯하다.
박근혜 정부들어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함께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박 대통령의 제안에서 출범한 청년희망재단 초대 이사를 지내면서 승승장구했지만, 그것들은 그에게 모두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자신이 추구한 욕망이라는 덫에 스스로 발목을 잡힌 것이다.
천재 소설가로 불리다 논란의 소설가가 됐고, 최순실과 결탁해 권력을 탐하는 폴리페서(polifessor)가 됐다가 종극에는 차가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 그의 삶은 우리사회의 지성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준엄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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