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라 미풍아’ 탈북자출신 악녀 ‘박신애’호연으로 시청률 견인

 

“안 그래도 저희끼리 농담했어요. 신애가 북한에 가면 총살 당하는 거 아니냐고. 북한에서도 우리 드라마를 즐겨 보신다니 더 긴장돼요. 신애가 남과 북에서 동시에 욕을 먹고 있네요.”

임수향(27)은 이렇게 말하며 깔깔 웃었다.

MBC TV 주말극 ‘불어라 미풍아’의 시청률을 확 끌어올린 일등 공신 ‘박신애’ 역을 맡아 호연을 펼치고 있는 그다.

지지부진하던 ‘불어라 미풍아’의 시청률이 최근 20% 턱밑(1일 전국 18.9%, 수도권 19.4%)까지 치고 올라온 데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악녀 신애의 활약이 절대적이다. 여느 악녀와 비슷해 보이지만 탈북자라는 점이 특이한 캐릭터다.

지난 5일 밤 경기 고양시 일산 MBC 촬영센터에서 녹화 중인 임수향을 인터뷰했다.

 

● “대본 읽을 때마다 심장 졸여 제 명에 못 살듯”

어려서는 굶어 죽을 뻔하고, 커서는 쏟아지는 총탄을 피해 목숨을 걸고 탈북한 신애는 잃을 것도, 두려움도 없다. 그래서 악행도 대범하고 끊임없다. 딸이 있음을 숨기고 초혼인 척 결혼한 것도 모자라, 딸을 보육원 아동으로 둔갑시켜 자기 집으로 다시 들인 여자다.

임수향은 “어휴, 신애의 간이 너무 크다. 대본 읽을 때마다 심장 졸여서 못 읽겠다”며 웃었다.

“신애는 대담하고 두뇌 회전도 빠르고 연기도 너무 잘해요. 저랑 이휘향(청자 역) 선생님과 가슴 졸이는 짓을 계속해야 하니까 에너지 소비가 너무 커요. 가슴 졸여서 제 명에 못 살 것 같아요. 언제 이 모든 게 들킬까 조마조마해 하면서도 계속 나쁜 짓을 하고 있잖아요. (웃음)”

가진 것 없이 탈북한 신애는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거짓말들이 모여 이제는 수습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자신의 은인이기도 한 미풍(임지연) 집안의 가족사를 훔쳐 사기극을 펼치고 있는데 이게 곧 터질 시한폭탄이 됐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니 미칠 것 같아요. (웃음) 저는 연기를 하는 것임에도 거짓말이라는 게 할수록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걸 느끼는데 진짜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싶어요. 저희 드라마 댓글을 보면 요즘 화제가 되는 거짓말의 주인공들을 빗댄 글이 많더라고요. (웃음)”

2월 말까지 방송되는 이 드라마는 신애의 악행이 언제 탄로 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저도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몰라요. 작가님께 여쭤봤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각오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 중간 대타 투입…“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

지금은 극의 중심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임수향은 ‘불어라 미풍아’ 출연을 놓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경험했다.

애초 박신애 역에 캐스팅된 오지은이 부상으로 갑자기 하차하면서 13회에 긴급 대타로 투입됐기 때문이다. 방송 중에 벌어진 일이라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단 이틀밖에 없었다.

“‘아이가 다섯’ 끝내고 휴가를 가 있던 중에 연락이 왔는데 정말 엄청 고민했죠. 오지은 선배가 너무 잘해준 역할이라 비교가 될 수밖에 없고,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이틀 뒤 촬영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악역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고, 특히 북한 사투리가 제일 문제였죠. 정말 이틀간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고민했어요. 너무 부담스럽고 무서웠는데, 왠지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수향은 “용기 내기를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할까 말까 고민이 될 때는 안 해서 후회하는 것보다는 후회를 하더라도 해보고 나서 하는 게 답인 것 같아요. 악역이라 지금도 정신적으로 힘든 게 너무 많지만 다행히 반응이 나쁘지 않고 저도 이런 역할을 해보기 잘한 것 같아요. 시청자들도 좋아해 주세요. 식당에 가면 욕할 줄 알았는데 ‘언제 들키느냐’고 궁금해하시면서 엄청나게 반가워하세요.”

 

● “신애 너무 나쁘게 그려져 편견 생길까 걱정도”

최근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불어라 미풍아’를 비롯해 한국의 탈북자 관련 프로그램이 북한 주민들에게 인기라고 말했다.

북한 주민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 드라마를 본다는 이야기가 다시 한 번 확인 된 것.

임수향은 “우리 드라마 북한 사투리 자문해주시는 선생님도 탈북자들이 특히 관심 있게 본다고 하셨는데, 북한에서도 많이 본다는 말을 들으니 너무 신기하면서도 큰일 났다 싶더라구요. 미풍이를 너무 괴롭혀서 나는 큰일 났구나 했어요”라며 웃었다.

“북한에서 보신다고 하니 특히 사투리가 걱정이죠. 제가 부산 출신이라 드라마에서 부산 사투리 이상하게 하면 ‘저건 아닌데…’ 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북한 분들이 제 사투리를 들으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신애는 함경도 출신인데, 함경도 말이 잘못하면 강원도 말 같기도 하고 듣는 이도 하는 이도 익숙하지 않은 사투리에요.”

신애는 서울말, 함경도말에 더해 최근에는 평양말까지 한다. 갑자기 죽은 줄 알았던 평양 출신 미풍이의 아빠가 나타나면서, 신애는 그간 미풍이 행세했던 원죄로 평양말까지 해야 하는 상황.

임수향은 “3개국어를 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신애 캐릭터로 인해 탈북자에 대한 편견이 생길까 하는 것이다.

“신애가 너무 나쁘게 그려지니까 혹시라도 편견이 생길까봐 걱정 많이 했어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도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고, 어디를 가도 욕망이 큰 사람, 나쁜 사람은 있으니 그런 큰 틀에서 생각하기로 했어요. 저는 대학 다닐 때부터 탈북민들을 많이 봤어요. 동기 중에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여러 호기심이 들었지만 결국 그들도 우리랑 별반 다른 게 없더라고요.”

그는 “신애가 나쁜 짓을 하는 것은 탈북민이라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라며 “신애의 말로가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끝까지 신애의 절박함과 간절함을 담아 연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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