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한국폴리텍대 청주캠퍼스 학장)

▲ 이현수(한국폴리텍대 청주캠퍼스 학장)

젊은 사회학자 오찬호는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에서 “대학 서열이 사회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의 잣대를 수능점수만으로 줄을 세워 판단하기 때문이다”라고 일갈한다. 옳은 말이다. 고백건대 ‘오로지 취업’이라는 날선 교육현장에서 때로는 천박하기까지 한 무한경쟁 시대에 포위된 청년들이 체온없는 학력위계와 자기개발에 치여 ‘각자도생’으로 살아가는 일상은 어른으로서 참으로 염치없다. 속절없는 학력사회로 내달리며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한국사회에서 빈곤의 대물림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교육을 통한 사회적 성취뿐이다. 그러나 ‘헬조선’이라 칭하는 일그러진 대한민국의 자화상에 속박당한 학생들에게 속절없이 순위가 매겨진 대학은 민주시민을 육성하지 못하며 체념적 푸념만 나처럼 늘어놓는다. 자성없고 방임적이다. 이십대의 언어 트랜드가 되어버린 ‘헬조선’이란 용어도 매우 급진적이다. 우리 사회가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걷어진 계급고착 사회라는 뜻이다. 그러나 급진적이나 불온하지 않다. 현실이라 믿는 사람들이 제법 많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지식인의 예언은 짐짓 서늘하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피터 드러커는 30년 후 지금과 같은 대학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근본적인 대학의 교육혁신이 없으면 대학의 생존뿐 아니라 나라의 미래도 암울하다. 대학의 구성원들은 사회가 원하는 인재육성보다 본인들이 익숙하고 가르치기 쉬운 공급자적 지식들만 주입해 왔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데도 대학은 현실에 안주했다. 통계에 치우진 정원감축과 정량평가 일변도의 교육부 구조개혁은 논외로 치자. 취업률 만능주의에 대학을 줄 세우다 보니 인성교육은 후순위고 기업들 눈치 보기에 바쁘다. 취업의 질 보다 취업률의 정량점수 몇 점에 천착하는 대학의 생존형 교육방식은 청년고용 빙하기의 이면이다. 

근대교육은 학력의 결과가 개인의 노력을 통해 얻어진다는 굳건한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 불평등에 대한 전제는 없다. 모든 개인들에게 시간은 균질하지 않다. 이른바 출발선이 다른 이들이 존재하는 한 ‘학력위계주의’는 공동선이 될 수 없다. 이를 타파하려는 사회적 담론은 난망하다. 교육을 통해 계층의 이동이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육을 통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면 그건 단언컨대 민주사회가 아니다.
공정경쟁과 기회의 평등이라는 선언적 구호로는 이 불편한 현실을 해결할 수 없다. 경제적 이유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의 많고 적음의 편차는 존재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균형의 조건들을 대학이 만들어야 한다. 너도 나도 융합과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시대, 취업 앞에 인문학은 뒤편인 대학교육의 임계점을 넘어서야한다.

현실 적응 능력으로만 인간은 생존하지 못한다. 인간에게 가치있는 것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주도권이다. 공동체의식과 인문학적 소양을 학습하지 못한 학생은 ‘학력위계주의’의 비교 가치로만 세상을 살아낸다. 대학에서 인문학적 교육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대학 진학률과 취업의 상관관계는 이미 붕괴되었다, 수능점수가 인생을 담보할 것이라는 낙관적 희망은 예상보다 빨리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른바 명문대 졸업생도 “내가 이룬 성과를 존중해 달라‘ 말하지만 원하는 취업은 난망하다. 학생들은 매몰차게 경쟁으로 치닫고 있지만 대학에 왜 가는 건지  생각할 기회는 없다. ‘묻지마’ 대학진학이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현실이 이러하다면 우리 사회가 대학입시 한번으로 개인의 인생이 결정된다고 믿는 ‘원샷 사회’에서 이제는 개인의 꿈을 실현할 기회를 폭넓게 열어주는 대학의 ‘텐샷 교육’을 제공해야한다. 지면이 허락하는 한 이에 대한 소견을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자성하건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일갈하던 내가 이제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청년들을 위로하지만 차마 어쩌지 못하는 사회적 관성의 벽 앞에서 청년들에게 나는 ‘꼰대’일 것이다. 끝 모를 취업난에 청년들의 분노는 차갑게 지속된다. 상품성을 키우기보다 인간성을 키우는 대학교육의 혁신은 학생들의 ‘본전생각’을 위로할 것이다. 청년고용 절벽의 시대, 그래 다시 문제는 대학이다.

필자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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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기획본부장

대통령직속 노사정위원회 단체교섭체계개선소위 위원

중앙노동위원회 위원

국회 정책보좌관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현)

월간지방자치 기획위원(현)

충북노사민정위원(현)

고용노동부 한국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 학장(2012.3-현재)

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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