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최순실 국정농단에 놀아난 대한민국이 이번엔 안팎 곱사등이 된 모양새다. 사드배치에 반발한 중국의 경제보복에 이어 일본도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면서 전방위 압박을 가해오고 있다.
역사의 가해자 일본이 피해자인 한국에 되레 큰 소리 치고, 피해자는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은 정말 바보 나라는 아닌지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도전은 예상 외로 거세다. 대표적인 박근혜 표 정책인 위안부 문제 합의와 사드 배치 문제는 졸속 추진이 발단이고 여기에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동력을 잃은 정부가 제 역할을 다 못해서 외교참사로 이어졌다.
문제는 누가 역사의 가해자인 일본이 큰 소리 치게 만들었느냐는 거다. 아베 신조 총리는 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되자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 총영사를 귀국시키고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중단, 한·일고위급 경제회의 연기 등 반격에 나섰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가 화근이다. 우리 정부는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반대하는데도 덜컥 합의해 줘 당사자들은 물론 국민적 분노를 키웠다. 합의 후에도 우리는 일본의 온갖 망언과 야스쿠니신사 참배, 소녀상 철거 요구 등 모욕을 당한 채 끌려 다니고 있다. 일본은 합의된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며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약속’이 소녀상 이전임은 물론이다.
아베 총리가 “일본은 우리의 의무를 실행해 10억 엔을 이미 거출했다. 그 다음으로 한국이 제대로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며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촉구한데서 저의를 알 수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는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내용에는 ‘소녀상 이전’이 아닌 ‘해결을 위한 노력’을 담고 있지만 일본은 소녀상 이전을 약속한 것이라며 철거를 요구 또는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답답하고 화나는 것은 일본의 이런 적반하장 반격에 우리 정부는 ‘찍’ 소리 못하고 저자세를 보이고 있는데 있다. 지난해 10월 아베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 편지를 보낼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다’고 했을 때도 우리 정부는 ‘언급을 자제하겠다’며 절제된 대응을 했다. 말이 절제된 대응이지 굴욕적 대응이다.
어디 이 뿐인가. 부산 소녀상 설치에 대해 아베 총리측이 “10억 엔은 마치 보이스피싱 당한 것과 같다”는 막말까지 했는데도 우리 정부는 기껏 한다는 게 발언 자제 요청, 아베 총리의 위안부 할머니 위로 편지 쓰기 요청, 일본 대사 면담이었다. 이러니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100억원(10억 엔) 받고 소녀상 철거에 동의해 줬다는 말을 듣지 않는가.
국가간 합의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는 없지만 10억 엔 때문에 국민이 수치스럽고 굴욕적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최소한도 진상을 조사하고 책임자를 밝혀 문책해야 한다. 일본의 후안무치한 행동이 계속된다는 자체가 합의가 잘못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를 전쟁터로 끌고 가 성노리개 삼은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돈 몇 푼으로 해결해야 할 만큼 대한민국은 가난하지 않다. 정신·육체적 고통을 평생 안고 살아 온 저 할머니들은 모두가 고령들로 언제 세상을 뜰지 모른다. 그들에겐 돈 몇 푼이 아니라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가필요한 거다. 

100억원 때문에 가해자에게 할 말도 못할 정도라면 차라리 아베에게 되돌려 주자는 주장도 그래서 나온다.
우리 정부도, 일본도 넘지 말아야 할 한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자존심 상하면 물불 가리지 않는 게 한국인 아닌가.
할머니들에게 배상금 받으면 된 거 아니냐고 하는 건 그들을 욕되게 하고 자존심 강한 한국인을 무시하는 행태다.
우리 정부는 이제라도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할머니들도 그걸 원하지 돈을 바라는 건 아니다. 지금도 수요집회에서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할머니들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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