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러온 박근혜 정권의 문제점은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지는 정권의 무능·무책임과 이른 바 1만명에 달하는 ‘블랙리스트’로 가한 예술계에 대한 박해,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의 사장 교체 등을 통한 언론 탄압 등 다방면에 걸쳐 나타났다. 그 가운데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것은 정경유착이다. 정권과 재계가 ‘윈윈게임’을 하는 동안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주체는 국민이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의 병폐는 비단 박 정권에서만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1988년 12월 14일 ‘5공 청문회’ 당시 청문회에 출석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전경련 회장으로서 일해재단 기금 모집에 전경련이 앞장 선 것과 관련해 “정부의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하고 모든 것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시류에 따라 돈을 냈다”고 말했다. 28년의 세월이 흐른 2016년 청문회장엔 재계 총수 9명이 불려나왔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정부의 요청을 기업이 거절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일견 정부의 강압에 하는 수 없이 내야했다는 어려움을 토로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피해자 코스프레’다. 기금 갹출이 ‘보험용’이라는 것을 모르는 국민이 없거니와 직·간접적인 특혜를 받은 정황이 특검 수사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오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특검에 뇌물공여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됐다. 삼성측은 최순실씨가 독일에 세운 코레스포츠와 220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었고 80억원 가량 송금했다. 또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했으며, 최씨가 사실상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제센터에 16억2800만원을 지원했다. 특검은 이같은 삼성의 지원이 박 대통령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밀어준 데 따른 대가로 보고 있는 것이다. 삼성의 정경유착은 박정희 정권 아래 있었던 1966년 ‘사카린 밀수사건’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가 정부 정치자금과 관련해 사카린 원료인 OTSA와 수입 금지품목이었던 양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등을 대량으로 밀수하고 이를 암시장이 되팔았던 것이다. 이병철에 이어 손자인 이재용까지 정경유착이라는 고리를 끊지 못했던 것이다.
SK그룹도 최태원 회장의 광복절 특사를 놓고 ‘빅딜’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SK는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에 삼성 다음으로 많은 111억원을 출연했다. 2013년 1월 회사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수감된 뒤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최 회장은 2년 7개월간 복역한 뒤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박근혜 정권이 ‘재계에 대한 특사는 없다’고 못박았던 약속을 깨고 행한 것이었다. 2015년 8월 10일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최 회장이 김영태 당시 SK사장과 나눈 대화록에는 “왕 회장이 귀국을 결정했다. 우리 짐도 많아졌다. 분명하게 숙제를 줬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대통령이 사면을 결정했으니 우리가 이에 상응한 대가를 주어야 할 것”이라는 게 특검의 해석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경유착은 마치 단골메뉴처럼 등장했다. 명예롭지 못한 정권의 말기를 국민들은 늘 비통한 심정으로 바라보곤 했다. 정경유착이라는 ‘악의 고리’를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정말 바뀌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50분간의 고별연설을 했다. “당신들은 나를 더 좋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며 그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그에게 레임덕은 없었다. 퇴임을 앞둔 그의 지지율은 50%를 상회한다. 우리도 그런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떠나는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운 그런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 투표라는 우리의 소중한 의무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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